어제 저녁 오금동에 있는 딸네 집엘 갔다.
소화제랑 손주들 영양제를 챙겨서 가니, 딸이 퇴근하여 저녁을 같이 먹을거라며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 도중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이 영등포 치매센타 위탁 병원으로 지정된거며, 본인이 센타장으로써의 해야하는 역활등을 얘기했다.
내 눈엔 아직도 어설프고 미흡한 면이 많이 보이는데 그런데로 가정과 직장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대견하고 흐뭇한 마음이 컸다.
엉겁결에 약대에 진학해 다니다, 엄마의 약사 생활을 보니 고생스러워 안 되겠다고 다시 의대에 진학한 3수생이다.
전공을 택할때도 쉬운걸 한다고 방사선과를 택했다가,별 재미없다고 다시 응급이 없는 신경정신과로 바꾼 이력이 있다.
딸이 진로를 택하고 바꾸고 할때, 난 좀 방관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당시 나는 너무 힘든 현실에 부대끼며 세 아이들의 (두살 터울) 교육에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던 때여서, 애들 장래 문제에 적극적인 마음을 쓸 수가 없었다. 뒷바라지를 어떻게 하겠다는 여건도 자신감도 없었으므로. 그렇다고 그들의 꿈을 외면하는 모진 마음의 소유자도 아니고, 엄마로써의 책임감과 자존심은 지키고 싶은 바램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엉거주춤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본인들의 선택에 따르는 어떤 길이 열리겠지 하는 막연한 심정으로.
다행히 딸은 서울대 의대에서 펠로우 생활을 훌륭한 선생님(딸 얘기론 무지하게 까탈스런 선생님) 밑에서 착실히 받았다.
결혼해서 애기가 둘일때라 종종거리며 힘든 시간을 보내는게 무척 안스러워 '좀 편히 살도록 내가 진로를 선택해 주었더랬으면..' 하는 후회가 가끔씩 들기도 했다.
지금도 힘들겠지만 이제는 사회인으로 자리를 잡고 제 분야에서 인정받는 의사가 되었으니 , 그럴수록 겸손한 마음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베풀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잔소리 같은 충고를 하니,
"그래야겠지?" 하며 순순히 받아드린다.
정신과 의사라 엄마의 비밀과 허점을 꽤뚫고 있는 것 같아 어떨땐 내 스스로 주눅이 좀 드는것만 빼고는 내가 딸 하나는 잘 낳았다는 자부심에 슬그머니 웃음이 났다.
09,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