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이야기

봄날

여해와담헌정 2016. 5. 16. 13:06

봄날

 

김 정연

 

산 벚꽃과 진달래가 수줍게 웃음을 터트리는 비룡산 산길을 오른다부드러운 흙길에 소나무 갈비가 깔린 길은 무척 폭신하다. 따사로이 비추는 봄볕을 받으며 연녹색 움을 틔우는 나무들의 몸짓과 한층 분주해진 산새 소리가 정겹다. 간간이 피어있는 제비꽃과 애기똥풀이 반갑게 웃는다.

 비룡산 중턱에 좌정하고 계신 아미타 대불의 인자한 모습에 합장하고 장안사를 찾는다. 부처님 전에 공양한 떡과 과상이 요사채 마루에 놓여 있다. 지나는 길손에게 베푸는 부처님의 자비다. 맛있게 한 점 먹는다. 절 문 바깥과 대웅전 앞뜰에 피어있는 벚꽃이 눈부시다. 땀을 식히는 소슬바람에 연분홍 꽃잎이 분분히 날린다. 화르르화르르 내리는 꽃비 속에 환영인 양 옛날의 단발머리 소녀와 까까중머리 소년이 보인다.

 

오십여 년 전 봄날, 중학교 졸업 여행을 서울로 온 경대 사대 부속 중학교 3년생인 우리는 청와대로 견학을 갔었다. 청와대 입구에서 현관까지 들어가는 긴 길의 벚나무 터널을 들어섰는데 때마침 바람을 실은 봄비가 내려 하얀 벚꽃 잎이 하늘거리며 파란 아스팔트 위에 떨어지고 있었다. 황홀감에 젖어 분분한 낙화들이 수놓는 화폭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때 김정연 사진 한번 같이 찍자.” 갑자기 변성기에 든 음성이 등 뒤에서 들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J가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 속에서 파란 비닐우산을 쓰고 나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 정연아, 좋겠다. 빨리 찍어라." 얼굴이 빨개지는 나를 보고 친구들이 놀려댔다. J는 여학생들한테 인기가 많았다. 키가 훤칠한 미남인데다 문학과 운동에도 소질이 있어 문예반 반장과 탁구부 주장을 맡았으며 공부도 상위권에 들었다. 한마디로 팔방미인이었다. 내가 문예반 부반장이니 사진 찍자고 하는 것일까? 고개를 갸우뚱하며, 점점이 떨어지는 벚꽃 잎을 우산으로 받아내면서 어색한대로 한 컷 사진을 찍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핑크빛 연정에 물들기 시작했다. 매일 쓰는 일기장엔 온통 그 애의 얘기 뿐이었다. 어쩌다 학교에서 마주칠 때면 가슴이 콩닥거려 숨을 잘 쉴 수조차 없었다 .아침 조회 시간이나 단체 운동 시간엔 그 애의 모습을 찾기가 바빴고 그 분주한 시선을 친구들한테 들킬세라 전전긍긍했다

서너 번 그 애는 우리 집엘 찾아왔다대문 밖에서 목련꽃 그늘아래서...” 휘파람 소리가 들리면 식구들 몰래 나가 어두운 담벼락 그늘에 숨어들어 얘기를 나누곤 했다. 빵집 같은 덴 갈 줄도 몰랐고 또 가서는 안 되는 시절이었다. 일요일엔 괜히 공부한답시고 학교엘 가서 먼발치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만 할 뿐이었다그 덕분이었을까? 공부에 별 취미가 없던 내가 성적이 조금씩 향상되었다. 연애가 가져다 준 크다 큰 소득이었다.

그러나 그 애와의 조청처럼 달고 달았던 만남은 너무도 짧게 끝나고 말았다.

이듬해 그 애가 서울의 K고로  진학하고 고향에 남게 된 나와는 자연 멀어지게 되었다.

물리적인 거리감이 심리적인 거리감을 가져올 줄 처음엔 몰랐다. 처음 몇 번은 편지가 오고 갔는데 차츰차츰 그 애에게서 편지가 오지 않았다. 당시에 나는 무척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인연이 끊긴 암울한 시간 속을 방황하며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고 꿈 많던 시절인 고등학교 1, 2년을 거의 삭막하게 보내었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나?”

친구의 채근에 화들짝 놀라, 머리와 어깨 위에 내려앉은 꽃잎을 털며 마음의 파문도 지운다. 봉수대, 용포대, 원산 성을 지나 삼 강 앞 봉에 오르니 저 아래로 술이 익어 가는 삼 강 주막의 초가지붕과 주막을 지키는 500년 넘은 키 큰 회화 나무 두 그루가 보인다.

봇짐장수와 나그네, 또 과거 길에 오른 선비들의 숙식처였던 주막. 넉살 좋은 주모가 푸근한 인심과 하룻밤 쉬어 갈 수 있는 휴식을 제공하던 주막은 역사의 뒤안길로 대부분이 사라지고 지금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 예천의 삼 강 주막이라 한다.

 삼 강(三江)마을은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이 합류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예로부터 이곳은 김해에서 소금을 실은 배가 드나들고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갈 때 거치는 길목이었다. 여기에 묶은 뒤 문경 새재를 지나 한양으로 가면 장원 급제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던 마을이다.

1900년 무렵 지어진 삼강 주막은 약 8평 남짓한 작은 규모지만 방 2개와 다락, 부엌 등을 갖추고 있으며 먼저 와 있는 객()에 불편을 주지 않도록 사방팔방으로 문이 7개나 나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한다.

50여 년 동안 주모를 하다가 지난 200589세 나이로 세상을 뜬 유연옥 할머니는 '뱃가 할매'로 불리며 주막을 운영하여 홀로 22녀를 키우셨다. 글을 몰랐던 할머니의 외상 장부는 부엌 벽이었는데 생전에 술 한 잔은 짧은 금, 한 주전자는 긴 금으로 표시해 놓았다고 하였다. 외상값을 다 갚으면 그 위에 가로줄을 그엇었는데 아직도 가로줄이 그어지지 않은 금들이 숱하게 남아 있다니 지나는 길손이나 민초들의 애환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자 했던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과 인연을 소중히 여긴 삶의 철학이 느껴진다.

1933년 대 홍수를 겪고 2007년 몇 차례 보수 작업을 마친 주막을 지금은 마을 부녀회가 운영하고 있으며 은은한 솔잎 향을 풍기는 막걸리가 일품이라는 주막엘 들릴 수 없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회룡포 마을로 향한다.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비상하는 용처럼 휘감아 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회룡포 마을은 '육지 속의 섬마을'이라고도 불린다.

넓은 백사장이 아득히 펼쳐진 내성천에는 쏘가리, 은어 등이 서식할 정도로 맑은 물이 흐른다. 타는 저녁놀을 받은 물속의 모래가 금싸라기 같다. 비룡산이 물속에 잠겨 있다.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근다. 비룡산이 흔들리고 봄이 흔들리고 내 마음도 흔들린다. 눈을 감으니 노을 지는 백사장에 나그네 둘이 보인다.

십여 년 전 동창회에서 만난 J는 세월의 주름과 반백의 머리가 정답게 느껴지는 중후한 모습이었다. 품속에서 빛바랜 사진 한 장을 꺼내는데, 놀랍게도 중3 때 수학여행 간 청와대 벚나무 아래서 찍은 사진이었다. 이걸 여태 가지고 있었느냐? 물으니 마음의 짐 때문에 정연씨를 잊을 수 없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리고 순수했던 연분홍 벚꽃 이파리가 비를 맞고 떨어지며 받았던 상처가 살며시 아무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동창 모임이나, 또 친구자녀들 혼사 때 만나면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멀고도 긴 세월을 돌아 왔지만 봄꽃 같이 화사한 나이에 만난 우리의 인연은 가을이 된 지금 다시 잘 이어지고 있다. 내성천과 금강이 만나 회룡포 마을을 휘감아 도는 여유롭고 유유한 인연같이.

언제 노을이 아름다운 날, J술이 익어가는 삼강 주막엘 한번 와야겠다.

옛 나그네가 쉬어가던 술청에 앉아 상큼한 솔향의 막걸리를 한잔 마시면, “두 분은 어떤 인연으로 예서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계시오?”하는 뱃가 할매의 목소리를 들을 것 같다.

막걸리 맛이 참 좋습니다.” J가 대꾸하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소리 내어 읊을 것이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박목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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