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이야기

친구의 고마운 마음은 돌에 새기고 섭섭한 마음은 모래에 새겨라

여해와담헌정 2016. 5. 16. 12:57

친구의 고마운 마음은 돌에다 새기고 섭섭한 마음은 모래위에 새겨라.

김 정연

<친구의 고마운 마음은 돌에다 새기고 섭섭한 마음은 모래 위에 새겨라>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라디오를 청취하다가 귀에 들어온 이야기가 온종일 가슴에 꽂혀 지워지지 않는다. 친구의 범주를 넘어 일반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이 말의 진실성에 갇혀 나는 그간의 내 인생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이순을 넘게 살아오면서 내 마음속 돌과 모래에 새겨진 사연들은 과연 얼마가 될까?

제일 먼저 시어머님이 떠올랐다. 이미 고인이 된 지 오래인 당신이 여직 내 몸과 마음에 오롯하게 아픔과 상처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걸 보면 나는 그분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돌에다 새겨 놓은 모양이다. 시외할아버지께서 경북 북부 지방의 면장으로 재직 중이 실 때 무남독녀로 태어나신 시어머니께서는 귀하게 자란 환경 때문인지 몰라도 고집이 황소처럼 세고 자아 또한 강한 분이셨다. 일생을 가사에만 전념하신 시어머님은 결혼 후 약국을 경영하며 가정을 꾸려가는 내 생활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기셨다. 태생적으로 몸을 아끼고 가사를 제대로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한 나의 준비 부족이 허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 역시도 모르는 바 아니나 며느리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매사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고 탓하는 당신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엄연히 시대가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름에서 비롯된 며느리의 습성을 쉽게 용인하지 않으셨던 시어머니에 대해 원망스런 감정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시어머니는 걸핏하면 신식 며느리의 가치관과 생활 태도를 흉보고 타박하셨다. 그 시절의 나는 그런 시어머님이 너무나 밉고 야속하여 곧잘 분풀이의 화살을 남편에게로 쏘아댔다. 그런 까닭으로 가정이 평화롭지 못한 날들이 많았다. 벌써 40년 전의 일이다.

 

올 초 친정어머니 기일이라 기차를 타고 대구 오빠네 집으로 갈 때의 일이다. 친정어머니에 대해 딸로서의 도리를 제대로 못했던 회한이 차창 바깥의 황량한 겨울 풍경에 겹쳐져 가뜩이나 스산한 마음이 더욱 우울해졌다.

불현듯 3년 전 일들이 눈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태생적으로 건강하셔서 한번도 심하게 앓아 누운 적 없었던 친정 엄마가 긴한 부름이나 받은 것처럼 갑작스럽게, 한밤 잠자듯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는 부음을 듣고 부랴부랴 대구로 내려갔었다. 졸지에 엄마를 여읜 슬픔이 꿈결 같기만 하여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머니를 장지에 묻고 돌아온 날 저녁에야 단장의 설움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그러고 나서 삼우제를 지내러 다시 내려갔던 친정집에 당도하니 엄마의 방은 그새 휑하니 비워져 있었다. 엄마의 손때가 묻었던 생활 도구와 반지거리들은 물론 옷, 사진 등속이 비 다녀간 산길처럼 깨끗이 치워져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체취가 깃든 유물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었던 나는 한순간 무참한 기분에 새삼 설움이 복받쳐 올랐다.

엄마 물건들은?

놀라서 외치는 나에게 올케는 일손이 있을 때 처리했다고 궁색하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전날의 내가 시어머니에게 그러하였듯 올케에게는 나의 친정어머니 역시도 될 수 있으면 빠른 시일 내에 흔적을 지워버리고 싶은 존재였던가? 친정어머니는 마음씨가 곱고 남들에게 베풀기 좋아하며 자기주장을 전혀 하지 않는 분이었다. 더욱이 올케를 끔찍이 생각하셔서 피붙이인 내가 보기에도 시어머니 맞나? 할 만큼 잘해주셨던 것이다.

니 오래비가 성질이 괴팍해서 언니가 고생이 심하다. 내가 마, ....서 못 보겠다.’고 자주 하소연하시던 친정어머니였는데.

마음이 상하고 서러웠으나, 꾹 눌러 참은 지 3년째가 되는 올해는 섭섭했던 마음을 올케에게 토로하고 가슴에 맺힌 응어리도 풀어야하겠다고 결심을 단단히 하고 있었다.

 

제사를 모시고 나서 모두들 모여앉아 음복을 하며 담소하는 중에 오빠 부부의 결혼 기간이 화제에 올랐다. 그새 결혼 50주년이라니! , 세월이 그렇게도 빨리 흘렀나? 힐끗 올케를 쳐다보니 얼굴에 주름골짜기가 패이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70대 노년이다.

언니, 제사 준비하느라 애 많이 썼어.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엄마하고 함께 살아온 시간은 25년이지만, 언니는 무려 50년을 엄마 모시고 살았네. 그동안 우리 부모님 모시느라 고생 많았어! 정말 고마워.” 기차 안에서 단단히 벼른 옹알진 마음은 온 데 간 데 없고, 칭찬과 고마움의 일색인 발언이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술술 나오고 있었다.

 

얼마나 잘한 짓이냐, 올케에게 내 섭섭한 마음을 풀려고 이런저런 원망 섞인 말을 했더라면, 올케는 굉장히 억울하고 한스러웠을 거야. 그날, 올케는 자신을 칭송하는 시누이의 고마운 마음을 분명히 돌에다 새겼으리라.’ 평소에는 무뚝뚝한 성격의 올케가 그 다음 날 서울로 잘 올라갔느냐?’ 는 안부 전화를 걸어온 걸 보면 그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참에 나도 시어머니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돌 대신 모래 위에 새겨야 하겠다. 그러면 하늘나라에 계시는 시어머님이나 친정 엄마도 흐뭇한 기분으로 나를 내려다보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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