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여행기
해외여행이 국민운동처럼 되어가는 시대에도 국민의료의 한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는 숙명(?) 탓인가, 아직 해외의 기본 관광지에도 발걸음이 미치지 못한 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영국 중에서도 에딘버러에 발길을, 그것도 출가한 딸네까지 포함하여 전 가족이 움직인 데에는 또한 나름의 숙명(?)이 있었다. 국록을 먹고 있는 아들이 관련분야의 전문성을 도야하기 위하여 두해가량 에딘버러 쪽의 대학원에서 수학하는 기간에 일종의 ‘패밀리 리유니언’, 가족의 재회, 가족 결합을 관광과 함께 추구하자는 가족정신, 가족 의지가 발동을 한 것이었다. 아들네는 며느리와 손자까지 포함, 네 명이 이곳에서 지내고 이제 귀국을 앞두고 있었다.
런던은 물론 오래 전에 다녀온 바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경로에 묻어서 한 번 더 갈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도 히드루 공항에 내린 순간이 바로 런던 도착이었고 다시 한 번 손주들과 누비기도 하였다. 하지만 에딘버러는 전무후무가 되지 않을까. 이런 저런 가족적 의미 또한 추가되기도 하니 이곳은 내 두껍지 않은 여행일지의 큰 부분을 차지할 마련이다.
에딘버러의 첫 인상은 우아한 귀부인을 만나는 순간 같았다.
도시 곳곳에 들어선 조지안 스타일의 건물들과 오래된 벽돌 길, 우뚝 솟은 성채는 기품 그윽한 부인의 느낌을 연상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우선 기후로 보아도 혹서기인 8월초의 날씨가 초가을 같이 선선하여 ‘근대의 아테네’라는 별명이 손색없을 정도로 은은하고 온화하였다. 다소 스파르타 정신이 흐르는 우리 대가족 식구들은 구시가지 뒷골목의 게스트 호텔에 짐을 풀고 서둘러 거리로 나섰다.
구시가지 높은 언덕 암벽 위에 세워져 있는 에딘버러 성으로 향하는 로열 마일 길에서 문득 이제는 세계적 명소가 된 ‘엘리펀트 하우스’와 만났다.
<사진>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안 엘링은 생활 보호 대상 미혼모였다. 해리포터 집필 초기의 동기로는 집안의 낸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이 카페에서 글을 썼다고 한다. 입구에 ‘해리 포터의 탄생지’라는 안내문이 코끼리 그림과 함께 방문객을 반긴다.
저 안쪽, 따뜻한 불빛아래서 작품 쓰기에 골몰해 있는 작가를 보는 듯 감격을 느끼며 손주들을 바라보니, 어저께 런던에 있는 해리포터 스튜디오를 방문 했을 때 환호작약 하던 녀석들이 오늘은 의외로 시큰둥한 반응이다.
허긴 헤리포터 스튜디오는 박물관 모습으로 전체를 성장(盛裝)시켜서 한국의 어린 해리포터 독자들의 혼을 이미 쏙 빼버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영화에서 보던 인물과 소도구등이 그대로 전시 되어있었고 마법의 성은 신비한 빛 속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온갖 맛과 향이 다른 사탕젤리와 개구리 초콜릿을 맛 본 뒤라,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없는 이 곳 카페가 무에 그리 반가웠겠는가.
로열 마일 길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킬트(타탄체크의 전통 남성 치마)를 입은 경기병이 연주하는 백파이프 음악이 즐거웠고 서너 명 씩 혹은 여남은 명씩 어울려 즉흥적으로 벌이는 하일랜드댄스는 눈까지 즐거워진다. 치마 입은 군인이 신기한지 아이들이 그들에게 사진을 청한다. 00101
8월 한달 동안 세계 각국에서 참여한 군악대들이 에딘버러 성 앞 야외무대에서 연주를 펼치는 밀리터리 타투는 여름 축제의 백미이다. 원래는 세계 제2차 대전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시작 되었으나 지금은 전 세계인이 즐기는 대축제로 발전되었다.
올해 초, 아들이 일찌감치 예매를 한 덕택에 긴 줄을 피해서 공연장 안으로 쉽게 들어갔다.
낮은 무대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지어진 높다란 객석은 이미 관람객으로 꽉 차 있다.
아프리카 즐루 부족의 전쟁 의식과 싱가포르와 뉴질랜드의 군악대들의 음악도 흥겨웠다.
공연 순서가 바뀔 때 마다 무대의 배경 역할을 하는 에딘버러 성에 갖가지 화려한 빛의 그림이 수놓아졌고 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은 현란했다.



마지막으로 스코틀랜드 군악대가 펼치는 백파이프와 타악기의 절도 있는 연주는 과연 주빈국 다운 면모가 보이는 실력이었다. 2년 전에는 참가해서 큰 인기를 얻었다는 우리나라의 농악대가 올해는 참가하지 못하였다는 말에 크게 아쉬운 마음이었다.

다음날은 에딘버러 성안을 탐방하였다.
육 세기에 수비를 위해서 처음 건축된 위풍당당한 모습을 지금도 고스란히 간직하며, 바다를 앞에 둔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잿빛 벽돌 성곽이 인상 깊었다. 킬트 모습의 위병들이 지키는 성에는 왕궁의 화려함은 없었지만 요새로서의 격전지였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노르만 양식으로 지어진 마가렛 성당과 스코틀랜드 왕실 박물관, 국립 전쟁 기념관 등이 있었으나 영국에서 머문 지난 3일 동안 박물관이나 유적들, 또 그리니치 천문대 등, 학습에 도움이 되는 곳을 이미 하도 많이 관람 시켜서, 이제는 초등 재학의 손주들이 지루해 하는 통에모두생략하고사진만두어장찍게되었다.
갑자기 대포의 총성이 크게 울려 깜짝 놀라니, 매일 오후 1시면 거행되는 의식이었다. 망루위의 대포는 역사와 전통의 세월을 간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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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튼 힐은 해발 110미터 산정에 구천문대와 넬슨 제독의 기념탑을 거느리고 있다. 정상에는 19세기 나폴레옹 전쟁 때 전사한 병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미완성 모뉴먼트가 우뚝 솟아있었다. 1882년에 에딘버러의 건축가 윌리엄 헨리플레이페어
가 설계하였는데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모방하여 만들었으나 건물은 완공되지 못하였고 현재는 피사드 부분만 남아있다. 며느리, 딸, 손자 손녀가 기둥 사이에 하나씩 올라 포즈를 취하니 멋진 사진이 되었다. 제 각각 취한 포즈에서 각자의 개성을 보는 듯하여 놀라웠다.

스코틀랜드는 독립을 위한 저항 정신이 뛰어나 과거 로마 침략기 때에도 이 지역은 로마에 복속되지 않고 별도의 왕국을 이루었다.
이후 잉글랜드의 침략에도 끈질기게 저항하여 외세에 결코 굴하지 않는 독립왕국을 유지하였다. 1700년경 경제적 이유에 의해 영국의 일원이 되었으나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괴롭힘을 당해서인지 아직도 자신들이 영국과 별개의 나라라고 생각, 영국인이 아닌 스코틀랜드인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어린 시절 소년소녀 문고로 접했던 ‘아이반호’의 작가 월터 스콧은 스코틀랜드의 대표적 작가이다.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스콧 기념비는 당시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 넬슨 기념비가 56미터 높이로 세워진다는 소식에 스코틀랜드인들이 더 높게 세우자는 뜻이 관철되어 61미터의 높이로 세워졌다고 한다.
수 백 년 동안 풍파를 겪어 왔을 거리와 건물들이 오래되어 비록 고되 보였지만 꿋꿋하게 모습을 간직한 것에 새삼 스코틀랜드의 자존과 자부심이 보이는 듯하였다.
삼일 동안의 길지 않은 스코틀랜드 여정에서 유서 깊은 나라의 자존과 품위를 넉넉히 흡수한 여운인지 마지막 날 저녁 석양에 물드는 황금빛 에딘버러 성을 바라보며 마신 스카치위스키의 맛이 더욱 짜릿하고 진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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