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이야기

마음이 흥분되고 잠시 행복했던 일

여해와담헌정 2013. 1. 5. 13:32

 

 

              

   지난 연말 송년회때, 부중의 한 남학생이 '무궁'교지에 실린 나의 글에 대해 얘기했다. 대구 본가에 들렸다가 교지를  펼쳐 보았더니 정연씨의 글이 있더라는. 무려 오십삼년전의 일인데, 나는 갑자기 나의 글이 궁금해졌다.그 친구에게 언제 대구가면 '무궁'을 좀 가져다 달라 부탁을 해놓곤, 기다리는 마음에 조바심이 일었다. 언제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는 일 아닌가.

 대구 부속중학교 교무실에 전화를 했다. 이런저런 사연을 얘기 했더니, 10분도 안되어 팩스가 날아왔다.

제목이 '하늘'인 일기 형식의 글과 3학년때 쓴 '임간 창작회 보고' 글 한편. 

읽어 내려가다, 얼굴이 붉어지는 부끄러움과 쓴 웃음이 일었고 또 한편으로는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맞아, 오랜 옛날 그 시절에 나는 '문학 소녀' 였다.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갖고 있었지.

정말 아주 오래전의 나로 되돌아가 추억에 잠겼다. 참으로 아름다왔던 시절. 담쟁이 덩쿨로 뒤덮인 붉은 벽돌의 교사와 넓은 운동장, 그리고 열정적으로 학습을 지도 하셨던 선생님들과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우리들.

모든게 눈에 선한듯 떠오른다.

순희에게 전화했더니, 하하 웃으며 속이 좁고 삐치기를 잘해 너의 마음을 상하게 한적이 있을거라며, 그 글을 팩스로 보내달라고 한다. 지금의 순희는 얼마나 여유롭고 온화한 성품을 가졌는데.... 

그 글을 올려본다.

 

                                

                                      = 하늘=

 

                                                               2~5  김 정연

 

 12월 14일

하늘이 얄밉도록 푸르다. 어쩜 밤 하늘이 저럴까? 양떼 같은 흰 구름과 반짝 별들이 반달을 둘러싸고 펼쳐져 있다. 오늘 낮의 하늘도 저렇게 푸르렀다. 어찌할 바를 몰라 흥분했던 나를 평온한 상태로 되돌아 오게 한 것도 저 하늘이다. 순희의 옹졸한 편지의 구절이 나의 입속에서 맴을 돈다.

 '너 같은 인간을 동무로 사귈 필요가 없다. 나의 생각이 지나친 것 같은 마음이 들지만 할 수 없다. 난 확실히 친구를 사귈줄 모르는 감정이 무딘 아인가 보다. 난 이젠 너와 동무로 사귈 마음이 없어. 욕하지 말기를.'

 다시 한번 서글픈 감정이 나의 마음을 휩싼다. 무언지 나의 몸에서, 나의 마음에서 떨어져 나간 것 같다.

 사람의 근성이란 누구나 다 같은가 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에 있어서는 더욱 같다. 무엇이나 하나를 끝까지 생각지 않으니 말이다.

순희의 눈에 내가 가시처럼 보인다면 치워줄 수도 있는 나의 성겪이다. 제가 그렇게도 나를 나쁘게 보고 있다면 나도 또한 저를 나쁘게 보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저와 맞대서 호랑이 같이 눈에 쌍심지를 돋을 필요는 없다. 그저 멀리서 아니 제일 가까이에 있는 마음속에서만 순희를 보고만 있으면 그 뿐인 것이다. 확실히 생각이 좁은 아이라고 생각한다. 조그만 일로 해서 이때까지 장래의 이상, 희망까지 나눈 우정으로써 그렇게도 쉽사리 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생각이 옳지 못하다. 마음이 뒤숭숭하다. 울 듯한 심정이다. 그 때, 그 날의 그 푸른 하늘이 다시금 그립다.

 

12월 15일

될수록 순희에게서 눈을 돌리려고 했지만 자꾸 그리로 눈이 간다. 순희도 우울해진듯하다. 쉽사리 끊을 수 없는 관계가 사람인듯 생각된다. 난 마음이 약하다.너무나 순희와 정이 들었던게지.이렇게도 나의 마음이 약하였던가? 의문스럽다. 장래에 큰 포부를 가진 아이로써 너무나 어리섞다. 마음을 굳게 가지자. 그리고 남을 미워하지 않기로 하겠다.

 

12월 16일

오빠가 오셨다. 방학을 빨리 한 모양이다. 얼마나 반가운지 믿음직하고 정다웁다. 많이도 변했다. 나의 처지가 부끄럽다. 여태까지 그렇게도 오빠가 편지로 '공부 열심히 하고 착한 학생이 되어라' 하신 말씀과 나는 영 대조적이다. 동무와 우정을 상한 얄미운 학생이 되었고 공부도 하지않는 게으름장이가 되었으니. 오빠에게 퍽으나 미안하다. 이제 부터라도 남에게 못지 않는 한 곳의 점만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참다운 학생이 되자. 혈연이란 참 신기한 것이다. 오빠가 오니 왜 내가 달라질까? 오빠가 좋아서, 정말 혈연의 이상한 힘인가 보다. 순희에게서 사과의 편지가 왔다. 나를 언니로 생각한다고. 고마운 일이다. 정말 사람이란 끝내 보면 좋은 사람들 뿐이다. 이런 아름다운 인정 가운데서 조그만 부속 2년 여학생이라고 존재 하고있는 내가 행복하다. 오늘은 이런 기쁜 일들 뿐이라니. 나의 운수가 대통한 날인가 보다. 하늘이 푸르고 별들이 반짝거린다. 다시 그 옛날의 나의 푸른 하늘이 나의 맘 속으로 돌아 왔다.

 

12월 17일

기쁜 일요일이다. 온 가족이 다정한 점심을 나눴다. 다시금 착한 소녀가 되겠다고 마음에 다짐한다. 재권이도 때리지 않고. 재권이가 귀엽다. 순희도 보고 싶다. 눈이 오기를 너무나 고대하고 있다. 첫눈의 정복자는 반드시 내가 되고야 말겠다. 눈이 오면 오빠를 톡톡히 골려 줘야지. 매양 즐겁기만 하다. 내가 꼭 '인형의 집'에 나오는 나나, 즉 종달새와 같은 마음이 든다. 인생이란 정말 행복스럽다. 생을 비관하고 눈물 짓고 있는 사람들을 내가 구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푸른 하늘을 나눠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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