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이야기

용감한 노년들

여해와담헌정 2012. 8. 6. 18:40

 

용감한 노년들(만곤, 용수, 재경, 진무, 정열, 영희, 정연)


           수종사 풍경


   양수강이 봄물을 산으로 퍼 올려

   온 산이 파랗게 출렁일 때


   강에서 올라 온 물고기가

   처마 끝에 매달려 참선을 시작했다.


   햇볕에 날아 간 살과 뼈

   눈과 비에 얇아진 몸

  

   바람이 와서 마른 몸을 때릴 때

   몸이 부서지는 맑은 소리


             -공 광규-


 혹시나 시인이 들었던 풍경 소리를 나도 들을 수 있을까 귀 기울여 보지만,

한낮의 이글거리는 햇볕만 수종사 대웅전 앞 마당에 하얗게 쏟아질 뿐, 바람도 숨죽인 여름 한낮이다.

노약자는 외출을 삼가 하라는 폭염 경보를 무시한 용감한 노년(?) 일곱이 운길산을 찾아   

절 간 뜨락에 앉아 땀을 식힌다.

신갈나무, 단풍나무 사이로 먼 데 있는 강물이 보인다.

작은 두 개의 강이 만나 하나의 큰 강이 되어 함께 흘러가는 강물.

우리의 인생도 저 강물을 닮았겠지.

서로 알 수 없는 인연들이 서로 만나 함께 살아가는 긴 旅(여)程(정).


 작은 바람이 이는 나무 그늘을 찾아 식탁을 차린다.

영희의 쌈밥 메뉴가 단연 장원이다.

막걸리 다섯 통에도 해갈이 안되어 미니 보드카 한 병마저도 비운다.

남은 안주가 아직도 풍성하니 산 아래 마을로 막걸리 사러 가겠다는 김만곤 회장의 말에 모두들 박수를 치며, "그래, 갖다 와라. 회장 노릇 확실하게 함 해 봐라." 하고 응원을 하니, 회장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자기가 나서면 모두들 만류할 걸 계산한 발언이었다나! 어쨌다나!  오늘 회장은 더위 먹은 발언을 예사롭게 잘한다. 아까 전철 옆자리의 아줌마들이 자기를 오십대 초반으로 봤을 거라는 얘기 등.(평소엔 안 그런데 완전 날씨 탓이다.)

 편한 자리를 찾아 잠깐 오수를 즐긴다.

부중 여학생 셋은 나란히 누워 우리들 삶의 괘적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또 인내 뒤의 보람 등등에 대하여 진지한 대화를 한다. 따뜻한 마음들이 오가는 참 소중한 우정을 느낀다.


 물 한방울 없는 계곡길을 따라 하산하니 물탱크가 있는 간이식당의 젊은 내외가 반긴다.

물탱크의 물을 받아 아쉬운 대로 땀을 씻고, 그늘막 밑의 평상에 자리를 잡는다.

연한 미나리전의 향긋한 내음과 구수한 도토리묵 덕택에, 또 엄청 흘린 땀 덕택인지 막걸리  맛이 여늬 때와 다르다. 담소가 즐겁다. 그래서 많이 웃는다.


 해가 설핏 기우는 시골 동네는 정적에 잠겨 있다. 뜰 안의 맨드라미와 담장에 드리운 능소화가 지는 해에 물들어 더욱 화려한 색을 뽐낸다. 길섶에 한 무리의 분꽃이 피어있다. 작고 빨간 꽃한송이를 뽑아 입술에 물어본다. 어릴적 많이 했던 놀이다. 멀고 아득한 유년의 내가 그립다. 왜 세월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가?


 시원하고 쾌적한 전철 좌석에 앉아 몇 달 후면 지공파가 되나? 손가락을 꼽아본다.

두어 달 남았다. 기분이 묘하다. 이것저것 무료이고 노인 대접을 받는 것이 그리 나쁠 것도 없으련만, 썩 달가운 마음은 아니다. 차비 같은 건 두 배로 내어도 좋으니 나이가 한 살씩 줄어드는 세월은 없나? 오늘따라 세월 타령을 자꾸 하는 내가 한심해 혼자서 쓴 웃음을 짓는다. (나도 더위를 먹었나?)


 

    2012,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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