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산사에서
김 정연
보광암 암자에 기거하고 있는 명진 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불심 깊은 친구와 함께 산을 오른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동안 자꾸 투덜대는 무릎을 녹음 우거진 칠월의 산이 어르고 달랜다. 오래 묵어 흙에 섞여가는 낙엽들의 독특한 향내가 코끝을 간질이고, 참싸리 나무의 연분홍 꽃잎이 비에 젖어 애잔하다. 노란색 원추리와 하늘 말나리가 반가운 듯 수줍게 웃는다. 빗발을 피해 풀숲에 숨어있던 풀벌레들이 인적을 느끼곤 바스락 소리를 내며 달아난다. 적당히 어우러지는 열기와 습기가 숲 속 중생들의 생명력을 북돋워 뿜어내는 기운이 산간에 가득하다. 바위를 치며 콸콸 쏟아져 내리는 계곡의 물소리가 도통한 스님의 쾌도난마처럼 우렁차고 시원하다.
암자로 통하는 마지막 계단을 힘들게 오르니, 명진 스님이 합장하며 반긴다.
처음 뵙는 스님은 동안(童顔)으로 해맑은 웃음을 잘 웃는 분이다. 예리한 듯, 저항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얼마 전 스님이 쓴, 그의 자전적 체험이라고 할 수 있는 <<스님은 사춘기>>라는 책을 읽고 나는 그를 좀 특이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스님의 나이 여섯 살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은 그를 출가로 이끌었으며, 군 복무 중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네 살 터울 남동생의 죽음은 그가 수행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공부에만 맹진할 수 있는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고 책에서 밝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은 '죽음'이라고 확언할 만큼 그는 죽음에서 모든 가르침을 얻고 깨달았다고 한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로웠던 스님의 거침없는 말과 행동이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대상이 누구이든 호호탕탕 소신으로 일관하는 모습 때문에 비난과 환호를 동시에 받는 분이다. 기행도 서슴지 않아서, 수유리 화계사에서 치른 춘성 스님의 다비식에선 지장보살 염불 대신에 노래자랑 대회를 하자고 하여 ‘나그네 설움’을 멋들어지게 불렀던 일도 있다.
명진 스님을 따르는 ‘단지불회’ 불자들과 그 불자들의 권유로 동행한 대중들로 암자는 가득 넘친다.
보광암 법당 앞뜰에 임시로 쳐 놓은 비닐 천막 아래서 사시 기도를 드리고 법문을 듣는다.
'틀 안에 들어가 있던 것에서 벗어나 완벽한 자유를 추구하고 이루신 분이 부처님이시다. 부처님께서는 당신에게도 얽매이지 말라고 하셨다. 얽매이지 말고 불안(佛眼)으로 불심(佛心)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사람이 부처님의 참된 제자이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스님의 법문이 날카롭게 나의 마음을 찌른다. 온갖 번뇌와 잡사에 얽매어 허덕거리는 내가 불쌍한 느낌이 든다. 벗어나지 못하고 비우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이니 어떻게 평안과 여유로움을 얻을 수 있겠는가?
스님의 법문은 계속된다.
'好信不好學이면 其弊也賊이요 好勇不好學이면 其弊也亂이라. (성찰 없는 믿음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도적이요, 무식한 게 용감하면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
<<논어>>의 공자 말을 빌려 와 이명박 대통령을 흉보며 불교를 탄압하는 것에 대하여 큰 울분을 토한다. 특정 종교를 위한 편향 정책과 불교를 폄훼하고 불법사찰과 정치 공작을 벌이는 정부를 못마땅해하는 마음은 이해가 되고 나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도를 닦아 禪(선)의 경지에 든 분이 왜 저렇게 날카로운 생각과 시정잡배나 쓰는 거친 언사를 마구 쓸까? 스님의 법문을 벗어나는 정치 발언과 인신공격을 하는 과격한 모습에 잠시 실망하며 문득 인도의 간디가 생각난다.
자기 정화의 단식을 하며 사티아 그라하(진실에의 헌신), 즉 적대자들에게 원한과 투쟁, 그리고 폭력을 쓰지 않고 저항해 그것으로 그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는 방법을 씀으로써 힌두교와 이슬람교도의 갈등을 해소하고 모든 종파의 상호 관용을 호소한 인도의 지도자인 간디를 명진 스님이 본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또 어렸을 때 읽고 감명 받았던 이솝 우화도 생각난다.
‘길가는 나그네의 코트를 누가 벗길 수 있나?’ 하고 해와 바람이 내기를 하는.
바람은 센 힘으로 큰 바람을 일으키지만 코트를 더욱 여미게만 할 뿐이었고, 따뜻한 햇볕을 보내어 더위를 못 이긴 나그네가 스스로 옷을 벗게 하는 지혜를 가진 해가 이긴다는 내용이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고 미움보다는 사랑을 베푸는 게 현명하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는 우화이다.
공격하고 힐난하는 과격함을 보이는 명진 스님도 ‘마음에서 힘을 빼라’는 자신의 설법을 스스로도 지키기 어려운 것일까?
조금 전 산을 오르며 보았던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혀 올라간 모양이 떠오른다.
葛(갈)나무(칡)는 오른쪽 방향으로 감아 올라가고, 藤(등)나무 줄기는 왼쪽으로만 감아 올라가니, 그 둘은 서로 만나지지가 않고 엉키기만 하는 식물이다. 그래서 생겨난 단어가 葛(갈)藤(등)이다.
한 개인의 마음속에서도 갈등은 잘 일어나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정치적 이념으로 갈라진 보수와 진보의 갈등, 또 지역 간의 갈등과 늙음과 젊음의 세대 갈등, 빈부 갈등 등 많은 갈등이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종교 갈등에 대해선 안타까운 마음이 무척 크다.
끝없이 얽히기만 하고 화합하지는 못할망정, 서로를 헐뜯고 상처 내지는 않는 칡이나 등나무만도 못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이 고달프게 느껴진다. 인간사에 존재하는 갈등은 특히 종교 간 갈등은 인간의 지혜로움과 공평한 사회적, 문화적 대우를 보장하는 관용으로 풀어나갈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상념에 잠긴 사이 법문이 끝났는지 요란한 박수 소리가 들린다. "비 쏟아지는 날 산속까지 찾아와 준 도반들에게 부처님의 가호가 있기를 바란다."며 스님은 예의 매력적인 미소로 인사를 하신다. 그 미소에 나도 박수를 친다.
비빔밥을 한 그릇 얻어 툇마루에 걸터앉는다. 월악산 작은 봉우리들을 휘감고 흐르는 운무가 유유하다. 비를 머금은 바람이 몸을 흔드니 마음도 상쾌해진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바라보며 점심 공양을 한다. 절에서 먹는 밥은 입안 가득 고소한 내음을 풍긴다. 멀리서 검은 등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어떤 이가 하는 일이 안 풀려 좌절하고 있을 때 ‘괜찮다고’ 하며 네 박자로 노래하여 위로해 주었다는 새다.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린다. 편협하고 옹졸한 나의 마음을 꾸짖어 주십사 기도한다. 오늘만 해도 명진 스님을 좋아했다, 실망했다, 변덕을 부리지 않았는가. 사실 인도의 간디처럼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또 마음을 비운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나 자신도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을 명진 스님에게 바라는 욕심은 나의 이기이지 않겠는가? 참회하며 부처님께 절한다.
그리고 헝클어져 있는 우리 사회의 모든 갈등을 풀고 화합할 수 있는 지혜와 덕목을 인간들에게 베풀어 주십사 기원한다.
부처님이 자비로운 모습으로 나를 내려다보신다.
20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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