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이야기

비내리는 산사에서 (이재무 샘이 수정)

여해와담헌정 2012. 7. 31. 12:51

보광암 암자에서 수행중인 명진 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집을 나설 때 가는 비가 내렸다. 빗길에다 산길이 가팔라서인지 자꾸만 무릎이 투덜거렸다. 해찰해대는 무릎을 우거진 칠월의 녹음을 시켜 애써 달래며 산을 오르는 동안 바닥 여기 저기 널브러진 채 부토로 돌아가는 중인, 오래 묵은  낙엽들이 품어내는 독특한 향내가 코끝을 간질였고, 참싸리 나무의 연분홍 꽃잎들이 비에 젖어 애잔하였으며 또 노란색 원추리와 하늘 말나리는 반가운 듯 수줍게 웃고 있었다. 비를 피해 풀숲에 숨어있던 풀벌레들이 인기척을 느끼는지 먼지처럼 사소한 소리를 내며 달아났다. 한 몸으로 스크럼을 짠 열기와 습기가 숲 속 중생들의 생명력을 북돋워 뿜어내는 생생한 기운이 숲을 가득 채웠고 바위를 치며 콸콸 쏟아져 내리는 계곡의 물소리가 도통한 스님의 쾌도난마처럼 우렁차고 시원하였다.

 

 더운 숨을 몰아쉬며 암자로 통하는 마지막 계단을 올라서니, 합장하며 반겨주는 스님이 있었다. 명진 스님이었다. 처음 뵙는 스님은 동안(童顔)이었다. 해맑은 웃음이 냉수처럼 시원하였다. 책을 통해 만나서인지 첫 대면이 그리 쑥스럽거나 어색하기는커녕 말에 과장을 실어 말하면 오랜 지기를 만난 듯 익숙하였다.

 스님이 쓴 자전적 체험기인 <<스님은 사춘기>>라는 책을 읽고 스님이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의 페이지마다 구절양장의 파란만장과 우여곡절의 생이 빼곡하게 줄글을 이루고 있었다.


 나이 여섯 살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죽음은 그를 출가로 이끌었으며, 군 복무 중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네 살 터울 남동생의 죽음은 그에게 수행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공부에만  맹진할 수 있는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은 '죽음'이라고 확언할 만큼 그는 죽음에서 모든 가르침을 얻고 깨달았다. 출가 이후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로웠던 스님은 거침없는 말과 행동으로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대상이 누구이든 호호탕탕 소신으로 일관하는 모습 때문에 비난과 환호를 동시에 받곤 하였다. 기행도 서슴지 않았다. 수유리 화계사에서 치른 춘성 스님의 다비식에선 지장보살 염불 대신에 노래자랑 대회를 하자고 하여 ‘나그네 설움’을 멋들어지게 불렀던 일도 있었다.

 

 법문이 벌어지고 있는 절 마당엔 스님을 따르는 ‘단지불회’ 불자들과 대중들로 가득 넘쳤다. 나는 보광암 법당 앞뜰에 임시로 쳐 놓은 비닐 천막 아래서 사시 기도를 드리고 법문을 들었다.

 “틀 안에 들어가 있던 것에서 벗어나 완벽한 자유를 추구하여 최고의 선을 이루신 분이 부처님이시다. 부처님께서는 당신에게도 얽매이지 말라고 하셨다. 얽매이지 말고 불안(佛眼)으로 불심(佛心)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사람이 부처님의 참된 제자이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스님의 법문이 날카롭게 나의 마음을 찔렀다. 순간 온갖 번뇌와 잡사에 얽매어 허덕거려온 내가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었다. 벗어나지 못하고 비우지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을 고집하면서 어떻게 평안과 여유로움을 얻을 수 있겠는가?

스님의 법문은 계속되었다.

 '好信不好學이면 其弊也賊이요 好勇不好學이면 其弊也亂이라. (성찰 없는 믿음은 세상을 어지럽히는 도적이요, 무식한 게 용감하면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을 빌려와 이명박 정권의 불교 탄압에 대해 울분을 토해냈다. 특정 종교를 위한 편향 정책과 불교를 폄훼하고 불법사찰과 정치 공작을 벌려온 정부를 못마땅해하는 마음이야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가기도 했지만 도 닦아 禪(선)의 경지에 들었다는 분이 왜 저리 날카로운 생각에 거친 언사를 쓰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과 회의가 들었다. 나는 오래 전 읽은 간디를 떠올렸다.

 자기 정화의 단식을 하며 사티아 그라하(진실에의 헌신), 즉 적대자들에게 원한과 투쟁, 그리고 폭력을 쓰지 않고 저항해 그것으로 그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는 방법을 씀으로써 힌두교와 이슬람교도의 갈등을 해소하고 모든 종파의 상호 관용을 호소한 인도의 지도자가 바로 간디였다. 더불어 나는 어렸을 때 읽고 감명 받았던 이솝 우화를 떠올렸다.

 ‘길가는 나그네의 코트를 누가 벗길 수 있나?’ 하고 해와 바람이 내기를 하였다. 바람은 센 힘으로  큰 바람을 일으키지만 코트를 더욱 여미게만 할 뿐이었고, 따뜻한 햇볕을 보내어 더위를 못 이긴 나그네가 스스로 옷을 벗게 하는 지혜를 가진 해가 이긴다는 내용의 우화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고 미움보다는 사랑을 베푸는 게 현명하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상념에 잠긴 사이 법문이 끝났는지 요란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비 쏟아지는 날 산속까지 찾아와 준 도반들에게 부처님의 가호가 있기를 바란다."며 스님은 예의 매력적인 미소로 인사를 하셨다. 그 미소에 나도 박수로 응답했다.

 비빔밥을 한 그릇 얻어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월악산 작은 봉우리들을 휘감고 흐르는 운무가 유유하였다. 비를 머금은 바람이 몸을 흔드니 마음도 상쾌해졌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수를 바라보며 점심 공양을 하였다. 절에서 먹는 밥은 언제나 맛있었다. 멀리서 검은 등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는 일이 안 풀려 좌절하는 이에게 ‘괜찮다’며 네 박자 노래로 위로해 주었다는 새였다. 저런 새 같은 이들이 세상에 많았으면 좋겠다.

 공양을 마치고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편협하고 옹졸한 나의 마음을 꾸짖어 주십사 기도하였다. 오늘만 해도 나는 명진 스님을 좋아했다, 실망했다, 하며 거듭 변덕을 부려대지 않았던가. 생각이 그렇지, 인도의 간디처럼 산다는 일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또 마음을 비운다는 게 어디 그리 간단한 일이던가. 돌이켜보면 나 또한 애증과 집착의 세월을 살아온 장본인이 아니었던가. 남의 눈 속에 든 티끌은 잘 보면서 내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해온 것 아니었던가. 명진 스님에게 품었던 감정을 털어내기 위하여, 그리하여 내려가는 길이 가벼워지길 바라며 나는 다시 삼배를 올렸다.

 법당을 나오니 비가 그쳐 있었다. 비가 다녀간 산길은 바람을 많이 넣은 공처럼 탄력이 있었다. 나는 튀어 오르는 공처럼 가볍게 발걸음을 놀리며 산을 내려왔다.


 

       20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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