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이야기

선배

여해와담헌정 2012. 9. 10. 19:09

 

선배 


                                                              김 정연


 “김 약사 내일 시간 좀 낼 수 있을까?”

 여름 장마와 무더위가 사람을 지치게 하는 후텁지근한 오후, 인적 뜸한 바깥 길 따라 한가한 약국으로 Y 선배가 전화를 했다.  대학교 선배이자 같은 지역에서 약국을 개업하고 있어서 가끔 약사회 모임에서 만나 뵙는 분이다. 후원하고 있는 보육원에 약을 좀 가져다주려고 하니 같이 가자는 그의 제의를 흔쾌히 수락하며 잠시 선배 모습을 떠올린다.


 자그마한 체구의 선배는 얼굴이 예쁜데다 말씨마저 상냥해 평소 동문 간에 인기가 높다. 게다가 놀기도 유별나다. 노래도 잘 부르는데다 춤 솜씨마저 뛰어나 모임마다 약방에 감초노릇을 톡톡히 한다. 약국 경영 틈틈이 영어를 공부하고 인문학 강좌를 듣는 등 자기계발에도 열성적인, 끼가 넘치는 다재다능한 재인이다. 일찍부터 약사회 일에 적극 참여, 20여 년 동안 대한 약사회를 이끈 숨은 공로자이기도 하다.

 그렇듯 모든 걸 갖추고 행복하기만 하던 선배에게 시련이 닥쳐온 건 13년 전, 건실한 사회인으로, 또 자상한 가장으로 큰 버팀목이던 남편이 갑자기 유명을 달리 하였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던가, 집에 불까지 나는 불행을 겪으며 선배는 많이 휘청거렸으나 다시 마음을 다잡고 경제적인 어려움과 마음의 공허함을 극복하기 위해 더 열심히 약국 일에 몰두하였다. 온종일 서서 약을 짓다 보면 발이 붓고 몸은 파김치가 되어 사는 의미조차 잃을 지경이던 2000년 초, 우연한 기회에 적십자 병원에서 주관한 ‘외국인 근로자’ 진료에 참여하게 된 선배는. 병들어 쇠약해진 그들이 약을 투약받고 고마워하는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정신적인 희열이 크게 오더라고 했다. 그들에게서 자신이 오히려 더 큰 위로를 받으며 ‘남을 위한 봉사를 힘이 미치는 한 해야겠다.’는 결심이 그때 단단히 서게 되었다고 하였다.

 선배는 다문화 가정 진료를 위시해 수해 지구나 홑몸 노인 가정 등 우리 약사들의 역할과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그들을 따뜻이 보살폈다.

 그뿐인가? 심야 약국 당번을 자진해서 행한다. 물론 집과 약국이 한 건물에 있다는 편리함은 있지만 한밤중 새벽 두세 시에 찾아오는 환자들이 얼마나 귀찮고 고달플까만 조금도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는다. 20여 년 전 나도 수없이 겪은 일이라 그 힘듦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의약 분업 이후로 자의적 조제권을 잃은 약사의 직능에 회의와 갈등을 느끼며 약국 일에 태만한, 나같이 나약한 인간은 다시는 못할 것 같은 어려운 일을 그는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 주는 데에 보람과 자부심을 느낀다고 하는 선배를 평소에 존경하며 닮고 싶어 했던 터라 보육원 동행은 더없이 기분 좋은 나들이가 될 것이다.


 ‘성모 자애 보육원’은 상계동에 있는 천주교 재단의 보육원으로, 부모를 잃었거나 부모가 돌보지 못하는 아이들 100여명(갓난애부터 고등학교 다니는 언니 오빠들)이 수녀님과 자원 봉사자들 품에서 평화롭게 자라고 있는 곳이다.

 자주 들려 낯이 익은 듯,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선배 품에 안긴다. 백일도 채 지나지 않은 갓 난 아기일 때 보육원에 와서 밝고 명랑하게 잘 자라 지금은 보육원의 귀염둥이가 되었다는 ‘미연’이다.

 선배가 풀어놓은 약 보따리엔 상비약뿐만 아니라 모기 살충제까지 다양하다. 나도 조금 준비해 간 어린이 영양제를 나눠 주니 꼬마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저쪽 방 한구석에서 웬 청년이 10여 개월 된 아기를 어르고 있다. 그 둘 곁에서 수녀님 몇 분이 눈물을 글썽이고 계신다. 궁금하여 여쭤 보니 사연이 기막히다.

 아기 아빠인 그 청년도 이 보육원 출신이라고 한다. 두 살 때 부모에게 버림 받고 이곳에서 성장해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사회에 나와 e 유통 업체에 취직하였다. 같은 직장에서 알게 된 아가씨와 사귀다 아기를 낳았다. 둘이 아기를 키우던 중 여자 쪽 부모들이 아기 엄마를 데리고 가 버려, 할 수 없이 그가 군대에 다녀와서 자립할 때 까지 아기를 맡아 달라며 온 것이라고 한다. 아기가 얼굴을 아빠의 무릎에 자꾸 들이밀며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과 안쓰럽게 바라보는 젊은 아빠의 모습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선배가 말했다. “봤지? 보육원 대물림하는 거. 다른 애들도 다들 딱해. 걔들을 보면서 난 내 슬픔에만 빠져있을 수가 없었어. 약국 일이 힘들다고 투정부리는 건 사치란 생각이 들데. 스트레스 푼다고 주말에 사람 만나서 먹고 수다 떠는 것도 마음에 걸려.”

 말끝이 젖는 선배를 보며 나는 부끄러웠다. 내 가족의 안녕과 나 자신의 행복만 생각하며 살아온 이제까지의 삶이, 나 자신의 안위에만 머물며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베풀지 못한 나의 이기심이 많이 부끄러웠다. 앞으로는 자주 선배를 따라다녀야겠다는 결심을 하며 참으로 오랜만에 마음을 밖으로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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