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이야기

삶에 테러 가하기

여해와담헌정 2010. 8. 16. 13:23

 삶에 테러 가하기

                                                        김 정연

                                                                                       

 H선배가 어제 유배지로 떠났다. 제주도 어딘가로 가서 세상을 잊겠다고 했다. 석 달 아니면 여섯 달쯤을 신문 전화 티브이를 모두 꺼 버리고 스님이나 구도자처럼 저잣거리와 연을 끊고 다소 느긋한 출가를 감행 하겠다는 선배에게 우리는 ' 거룩한 가출을 축하합니다.' 하고 박수를 쳤다.

 "자발적 유배생활이군요." 부러운 마음을 내 보이는 내게 선배는 "맞아, 그 유혹에 빠진지가 3,4년 되었어. 이제사 실행해 보려는 거지."

 H선배는 경대 사대 부속 중, 고등학교 3년 선배이시다. 동창회 등산모임에 참석하면서 가끔씩 뵙는 분인데, 5년 전 LG 계열사 사장을 끝으로 일선에서 물러나 지금은 유유자적 지내시는 분이나, 아직도 문학에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남은 생의 열정을 문학에 바치고 싶어하는 참 순수한 분이다.


 유배란  왕조 시대 선비들이 역모를 꾀했거나  모함에 빠져 멀리 척박하고 생소한 곳으로 내쳐지는 형벌이었다.  누명을 쓴 선비들이 강압적으로 관계의 단절을 당하고 억울함을 통탄하며 괴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 정약전과 정약용 형제, 그리고 윤선도나 송강 정철이 그렇게 희생당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만약 유배당하지 않았다면 추사의 <세한도>나  정약전의 <자산어보>, 또 송강의 <송강별곡> 같은 위대한 작품들이 탄생이나  했겠는가? 유배 생활의 외로움과 고독을 오로지 자신 속으로 침잠하는 시간으로 잘 활용하여 창작에 전념함으로써 그들은  불후의 명작을 남긴 것이다. 

 

  "가족의 이해와 허락을 받으셨어요?" 내 질문에 선배는 "물론 처음에는 마누라와 자식들이 청소년기의 가출 욕망쯤으로 치부하여 한심해 하더군. 내가 잘 설득했지, 건강에도 도움이 될 거고, 백수이니 사회적으로도 손해 볼 거 없고, 또 알 수 있나? 대단한 작품 하나 써 올 수도 있다고."

 그렇다. 나는 선배가 멋진 작품 하나를 잉태 하실 거를 믿는다.  평생의 꿈인 작가의 길에 무난하게 진입하여  무척 활기 찬 심신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을 확신한다.

 

  에드가 알란 포우가 말한  행복의 네 가지 조건은 

 첫째 야외 생활 , 둘째 어떤 존재에 대한 사랑, 셋째 모든 야심으로부터의 초월, 넷째가 창조 행위였다.

 여기에 딱 부합 하는 것이 H선배의 꿈인 자발적 유배생활이다.  한없이 통속적으로, 이렇게 속절없이 늙어가는 우리의 상투적인 삶에 테러를 가하여 커다란 행복을 꿈꾸는 H선배의 용감성에 갈채를 보낸다.

                         2010, 4, 22

                        

'그룹명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편지(1)  (0) 2010.09.10
가을을 꿈꾸며  (0) 2010.09.02
몸의 반란  (0) 2010.08.14
[스크랩] 친구들이 그리운 날  (0) 2010.08.11
청량산 산행기  (0) 2010.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