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이야기

몸의 반란

여해와담헌정 2010. 8. 14. 11:56

몸의 반란


                                                             김 정연




 겨울의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1월 중순, 아침에 일어나면 재채기가 연달아 나오고 콧물이 흘러 코를 몇 번 풀었더니 갑자기 귀가 이상해졌다. 사람의 말소리, 또는 라디오 음악 소리 같은 게 왼쪽 귀에서 이중으로 들리는 거였다. 감기겠지 하고 약을 이삼일 먹었는데 별 효과가 없어 대학 병원에 가서 청력 검사와 코 속 검사를 하였다. 귀는 이상이 없다하고 코는 알레르기 비염이라 했다.

그럼 왜 耳鳴이 생겼나니까, 코 땜에 그럴 수도 있고 스트레스로 인한 것일 수도 있다 했다. 며칠 약을 먹고 코 속에 흡입하는 약도 써 보았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이비인후과를 개업하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 했더니, 너 늙느라고 아픈 거다. 그리고 빨리 안 낫는 건 술 마셔서 그러니 술 끊으라 했다.  나를 무슨 대단한 술꾼으로 매도하면서.

 나보다 키도 작고 생일도 몇 달 늦는 친구이긴 하지만 의사 아닌가? 아픈 환자에겐 의사는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위대하고 위엄이 있다. 고분고분 지시대로 따르길 며칠, 별 반 좋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명은 은근히 나를 괴롭히며 신경도 날카롭게 한다. 이낏병 하나도 제대로 치료 못하고, 지가 무슨 의사야. 하며 나도   친구를 돌팔이로 매도 하던 차에 설 날 세배 온 사위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장모님 몸이 허약해지신 것 같으니 보약을 지어  드리겠다 했다. 그럼 녹용을 넣어 주게, 우리 나이엔 녹용이 가끔 필요하지?  아느체 하는 나의 주문에, 하하 알겠습니다, 최상의 약을 쓰겠습니다. 한다.

 열심히 한약 먹기를 보름쯤 했더니 몸의 컨디션도 좋아지고 서서히 이명이 사라졌다. '우리 정서방이 한의학 박사 아니냐, '사위의 정성과 좋은 약 덕분인지 나는 다시 젊은 몸이 되었다고 친구들에게 사위 자랑을 하였다. 은근히 한의원 PR도 겸해서.


 근데 한두 달 전부턴 손가락 마디가 조금 굵어지고 구부렷다 폈다 하는 것이 좀 거북스러웠다. 왠만 하면 병원에 가지 않고 내 스스로 약으로 해결하는 터라, 또 특별히 아프지도 않으니 차일피일 병원 가는 일에 게으름을 피웠다.

 헌데, 며칠 전 약을 지으러 온 어떤 환자의 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칠십 정도 되는 여자  분의 손가락들이 이리 저리 휘어져 불 위에서 오구라든 오징어 발 같은 모양이었다. 양 손이 모두. 왜 이렇게 되었냐니까  류마티스 관절염 인데 병원에 일찍 안 가서 이 정도 까지 되었다고 했다.

 류마티스란 자가면역 질환의 하나이다. 면역계의 정상적인 자가관용 기전이 실패하여 자신의 건강한 세포나 조직에 대한 면역반응이 일어나는 질환으로, 류마티스 관절염이 시작되면, 활막 조직의 혈액으로부터 여러 가지 염증 세포들로 이루어진 ‘판누스’ 라는 덩어리를 형성하고 이것이 연골을 파괴하고 관절의 변형을 가져오며 관절 주위에 있는 뼈도 약하게 만든다.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마디가 약간 울퉁불퉁해 진 것 같이 변형이 와 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으며

걱정스러움이 밀려온다. 혹시나 나의 손가락도 류마티스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 문득  김 세연 할머니의 모습이 떠 오른다.


  장안동에서 약국을 할 때 환자 중 한 분이신 할머니는  손가락 마디가 붓고 통증이 심한 류마티스를 앓으셨다. 연세는 일흔 대여섯 되시며 키가 자그마하고 젊었을 적엔 참 예뻤을 얼굴이신 파지를 줍는 분이다.  당신의 몸체보다 서 너 배나 큰 파지 짐을 수레에 싣고 다니며, 가끔 허리를 펼라 치면 ‘아구구 허리야’ 하며 허리를 두드리신다.

 장성한 아들이 하나 있는데, 정신이 온전치 못하여 하루 종일 방에만 처 박혀 있다고 하였다. 할머니가 파지 줍고, 나라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겨우 생활을 꾸려 가신다.

 ‘참 불쌍한 분이다.’하며 이약사와 나는 약국에서 나오는 빈 박스와 파지를 차곡차곡 모아 뒀다가 할머니 수레에 실어 드린다. 마침 점심 때에 들리시면 식사를 대접하고 가끔 쌍화탕도 드린다.

 한번은 2,3일 안보이던 할머니가 얼굴에 멍이 시퍼렇게 들어 나타났다. 팔도 잘 못 쓰시고 얼굴엔 수심이 가득 차 있다. 왜 이렇게 되었어요? 하고 물었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아들한테 맞았다고 하셨다. 깜짝 놀라, 그럼 요양소에 보내야죠. 동사무소에 신청하면 될 텐데,  하니까 안 그래도 이웃에서 요양소 보내라고 해쌓는데... 하며 말끝을 흐린다. 그럼 지금 저랑 동사무소엘 가세요. 하니까  요양소에선 사람을 막 때리고 그런다는데, 불쌍해서 어쩌나,  그래도 내 자식인데 내가 거두어야지. 하신다.

 온전치 못한 자식을 당신의 업보로 생각하시며 힘들고 고통스런 삶 일망정 자식을 곁에 두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 숭고하게 느껴져 마음이 숙연해졌다.

 안타깝기만 할뿐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는 나는 할머니의 허리와 손가락의 통증이 심해지지 않도록 정성껏 약을 지어드리는 도리 밖에 없었다.

 이년 전 내가 약국을 월계동으로 옮긴 후로는 할머니를 뵙지도 못하고 소식도 못 들었다.

그 분의 안부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아픈 허리와 손가락은 더 나빠지지 않았을까? 지금도 리어커를 끄실까? 또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친구의 말대로 나이를 먹으니 몸이 반란을 일으키는 걸까?

손가락 병 다음엔 또 어떤 놈이 나의 몸을 침범해 올 지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뒤 늦게 생활의 반란을 꿈꾸는 내가 그만 몸의 반란에 지고 말면 큰일 일 텐데, 어찌하나.


               2010, 0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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