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이야기

늦게 철든 이야기<자기 소개서>

여해와담헌정 2009. 6. 19. 16:24

      늦게 철든 이야기  <자기 소개서>

                                                          김 정연


 아침 출근길에 맑은 햇살아래서 노랗게 멍울 터트린 개나리를 보았습니다.

 봄이 왔군요.

 어김없습니다. 며칠 우왕좌왕 설레이며 몸살을 앓았던 것은, 이리 봄을 맞이하려는 마음의 병이 도진 것임이.

 난 약사라는 직업과 30여년 동안 갈등하며 살아왔습니다.

 바람 불면 거리로 나가고 싶고, 꽃 피면 먼 바다가 그리웁고 낙엽 지는 저녁엔 친구와 만나 색깔 예쁜 술한잔 마시고 싶은 열망과 마음이 심란하여  외로울 땐 진짜 어디로든 멀리 달아나고 싶은 바램 땜에 몸살을 지독히도 앓습니다.

 가끔 시인이 된 동창이나, 수필가로 등단한 친구의 작품을 접하는 날엔,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날 정도로 내 자신이 초라해 져 마음의 고통을 이겨내느라 가끔 객기도 부립니다.

 한심 하지요?

 약국에 메여 나의 어릴적 이상과 꿈은 비참히 시들고, 만나고 싶은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을 한탄하며, 약사가 되라고 강요하신 부모님이 무척 원망스러웠어요. 그래서 약국의 규모는 구멍가게만 하고, 애들 키우며 살림하랴 약국일은 항상 뒷전이었죠.

 그런데 쉰이 넘어 내 마음과 생각이 슬슬 바뀌어 졌습니다. 애들 성장 시키고 남편과도 소원해 진 친구들이 “너는 좋겠다. 일이 있어서. 남아도는 시간을 죽이기가 얼마나 고통인지 잘 모를거야. 따라서 자신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 같아 허무해 지기라도 해 봐, 정말 괴롭다.”

 그런가? 그들의 얘기가 그럴 듯하게 들리고 정말 하나 둘 퇴임하는 남자 동창들의 한가로운 모습을 볼 때 ‘아! 다행이다. 나는 내 일이 있어서.’ 라는 느낌이 서서히 느껴지더군요.

 보람되고 자긍스러운 일도 겪습니다. 남의 아픔을 치료하고 그들의 애환에 내가 힘이 되어 준다는. 요즈음은 약국일이 즐겁습니다. 이 나이에 시간도 잘 보내고 덤으로 용돈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직장이 어디 잘 있겠습니까? 하하

 늦게 철들었지요?

 저녁부터 비 내린다 하니, 이 비 그치면 봄은 완연히 우리 곁에 와서 잠깐 머물다 홀연히 살아지겠죠? 내 책상 위의 영산홍은 시들어 가나 대신 난의 우아한 자태와 향이 나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ㅡ2009 .3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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