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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유감

여해와담헌정 2013. 6. 29. 15:12

생일 유감


                                                     김 정연


 오늘 아침도 평소 먹던 대로 오이 무침에 밥 서너 숟갈로 아침을 해결하고 약국으로 출근 하였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일상을 시작했지만 내심 속이 불편했던 게 사실이었다. 일년에 단 한번 있는 생일인데 평일과 다르지 않게 하루를 시작한다는 게 여간 속상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전 열시쯤  며느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역국 드셨어요?” 하고. “당연히 못 먹었지,”

나도 모르게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말 속의 가시에 찔려 며느리는 과연 뜨끔했을까?

 지난 토요일 뷔페식당에서 가족들이 모두 모여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배불리 먹었으니, 당일 아침 미역국쯤이야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셈으로 치고 있을 런지도 모른다

 딸이든 며느리든 어머니 생일을 잊지 않고 챙겨주어 떳떳하게 자식 노릇 잘 했다고 스스로들 자찬하는 꼴이 눈에 선했다.

  생일을  며칠 앞두고 나는 손주들을 불러 모아 이벤트성 과제를 내 주었다.

 할머니에게 편지를 한 통씩 써 오너라, 제일 잘 쓴 사람에겐 특별상을 주겠다.  미끼까지 던지고는 내심, 고 귀여운 것들이 할머니를 찬양 내지는 흠모 한다는 말을 써 오겠지, 하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한 녀석도 편지를 써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유인 즉슨, '쓸 시간이 없었다' 는 손주 둘과 그나마 제일 나이도 많고 문장력도 있는 외손녀는 '쓸 말이 없어서' 였다. 하늘이 무너지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였다. 내가 그동안 녀석들에게 쏟은 애정이 얼마인데. 서운하고 실망스러웠고 폭폭했지만  애써 내색 하지 않았다. 어린것들을 상대로 '수필가 할머니'로서의 위상을 세워 보려던 나의 계획은 무참하게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나는 나를 스스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디지털 문명에 익숙한 아이들이 아날로그 정서에 익숙한 이 할미의 심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인가, 하며.

뚜렷한 근거 없이 불쑥 지난 일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자식들을 키우면서 나는 가족들과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다. 나는 유독 편지 쓰기를 좋아해서 핑계 꺼리만 생기면 편지를 써대곤 하였다. 부부 싸움 뒤에 혹은 아이들에게 심한 꾸지람을 한 뒤에는 편지를 썼고 큰아들 둘째아들이 군대에 가 있을 때는 이틀이 머다 하고 편지를 썼다. 딸애와는 마음 깊은 곳의 얘기를 나누는 것도 편지를 통해서였다.  내용이라야 별거 없는, 아이들아 잘 자라주어 고맙다, 여보 내가 좀 심했어, 등등이었고, 내 생일과 어버이날에 받는 편지는 엄마 저를 낳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엄마의 기대에 어그러지지 않는 아들(딸)이 되겠어요. 하는 상투적인 내용과 표현이었지만 그 심상한 내용과 표현들이 매번 나를 감동시켰고 나는 행복했었다. 이게 바로 편지의 위대한 힘이었다. 그러나 어느날부터인가 내 일상에서 편지가 시나브로 사라져 갔다. 아이들이 장성하고 나서 편지 쓸 일이 없어졌고 남편하고도 나이가 들면서 싸울 일이 없어진 탓으로 편지를 쓸 마음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편지에 대한 기억은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어린 손주 녀석들이야 하물며 말해서 무엇하랴, 달라진 시대의 풍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잔뜩 기대를 건 내가 구식이고 잘못이지, 그 애들을 탓할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편지 대신 핸드폰이 소통의 도구다. 문자와 카카오 톡으로 빠르고 간편하게 의사를 주고받는다. 그런 그들에게 편지란 낯설고 어색하기만 할 것임에 틀림없다.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하고 달랬지만 그렇다고 불편한 속이 갈아 앉는 것은 아니었다.

 점심에도 평소 잘 먹던 대로 생크림 빵을 하나 먹고 야쿠르트와 과일을 챙겨 먹었다. 이것저것 약국에서 할 일이 많은 월요일이라 조금 바쁜 탓에  별 동요 없이 오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환자가  뜸해진 저녁 무렵 창밖으로 눈을 돌리니 거리에 어스름이 내리고 가로수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게 보였다. 까닭 없이 마음이 쓸쓸해졌다. 갑자기 배도 고프기 시작했다.

 불현듯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올 정초에 세상을 떠나신 어머니. '약국 보느라 밥도 제때 못 먹는구나' 하시며 딸이 안쓰러워 한시도 마음이 편치 않다고 입버릇처럼 생전에 말씀 하시던  어머니.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이 젖어왔다. 어머니가 살아 계시면 오늘 같은 날은 내가 미역국을 끓여 어머니에게 드리고 싶은데. 그동안 한 번도 그렇게 하지 못한 후회에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난초 화분도, 장미 꽃바구니도,  편지 한 통 못 받은 생일 날 저녁밥은 걸러야겠다. 너무 처량해서 밥 사 먹기는 싫고, 그렇다고  축하 전화 한통 없는 남편에게  밥 사달라고 청하기에도 내키지 않는 기분이다.  몇 해 전만 해도 사들고 온 화장품을  슬그머니 화장대 위에 놓아두곤 했던 이었는데, 오늘 아침 별 말이 없었던 걸로 봐선 분명 생일을 잊고 있음에 틀림없다. 손주들에게서 느꼈던 상심감에 더하여 남편의 무심함을 크게 탓하고 싶은 심사가 된다. 허나, 마음을 달랜다. 그도 이젠 슬슬 기억력 감퇴가 오는 나이 아닌가, 그리고 지난 예순 세 번은 열심히 생일 밥 먹었으니, 올 한 번쯤 안 먹는다고 무슨 일이야 생기겠나. 또 내가 나를 타이른다. 그제, 어제 열심히 먹어서 불어난 체중을 줄이려면 굶는 수밖에 더 있겠나, 하고.

 예순 네 살, 나의 생일 밤이 깊어간다. 쉬이 잠이 오지 않아 문 밖을 나선다. 소슬한 바람 이 옷깃에 스며든다. 그믐이 가까워서인가, 달조차 뜨지 않았다. 게밥바라기 별이 물을 머금은 것처럼 젖어 반짝인다.

  어머니가 계시는 하늘에 대고 나는 마음의 편지를 쓴다.

“엄마, 나를 낳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딸 걱정 그만 하시고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