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보내는 산행(영취산, 장안산)
바람이 세차게 분다.
하늘은 맑고 투명하여 늦가을의 청명함이 대기에 충만하나, 잎을 떨구고 허허로운 가지들을 흔들며 부는 바람에 귓불이 얼얼하여 후드를 뒤집어쓴다.
산길은 무척 가파르고 마른 낙엽 밑으로 살폿 얼어있는 흙길이 간간이 보인다.
지루하게 이어진 나무계단을 몇 개 오르고 바람에 떠밀리듯이 30여분 숨가쁘게 오르니
영취산 정상이다. 북쪽으로 아스라한 시선 끝에 눈덮인 덕유산이 보인다.
백두대간 금남호남 정맥이 갈라지는 분기봉이라는 의미 말고는 그저 세찬 바람이 부는 산이라는 느낌으로 각인된다. 머리칼을 날리며 사진을 한장 찍고 올라왔던 길로 다시 서둘러 내려온다.
장안산 오르는 길은 무척 편안하다.
바람도 잦아든, 길게 이어지는 산죽길의 폭신한 흙길을 걸으며 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쏴아 쏴아 산죽잎을 흔드는 바람 소리는 흰 포말을 이루며 밀려오는 동해의 파도를 닮았다.
키 보다 큰 산죽 숲길 사이로 밝은 햇살이 스며든다.
옆에서 같이 걷던 김철호 산우회회장이 산죽의 茶(차)는 맛이 은은하고 맑다고 얘기한다.
맑은 차를 마시면 마음도 정갈해 질까? 생각하며 구해서 함 마셔볼 결심을 한다.
목재칩을 뿌린 좁은 산길을 수월하게 오르니 정상 조금 못 미쳐 광활한 억새의 세계가 펼쳐진다. 따스한 햇살아래 은빛 물결이 너울거린다.
2년전 초겨울, 포천 명성산 억새는 황금빛이었었다. 팔각정 옆의 빨간 우체통에 내 마음의 편지를 담았었는데 그 마음의 흔적도 사라진 세월의 덧없음이 허망하다.
장안산 정상에서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의 순박한 산들을 휘돌아 본다.
장수덕유산, 남덕유산, 백운산, 또 지리산의 무수한 봉우리 등등 서재룡 산대장의 설명을 열심히 들어 보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산은 그저 모두 같은 느낌을 준다. 아득한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표지석을 중심으로 사진을 찍는 선후배들의 얼굴이 즐거워 보인다.
산 정상에 올랐다는 뿌둣함과 대견함. 자기 스스로에게 느끼는 이런 만족감은 나이가 들수록 적어진다. 기회도 없어지고 능력도 저하되니, 산에 올라서야 비로소 느껴지는 자만감.
나도 그 자만감을 길이 보전하고자 어울려 사진을 찍는다.
억새 군락지로 내려와 자리를 잡고 배낭을 연다.
예전에 우리 15회의 오찬 메뉴가 부실하다고 쫑알거린 경솔함을 늬우친다.
먹을 것이 많다고 마음이 풍요롭고 우정이 돈독해 지는 건 아니잖겠는가?
김만곤 회장의 무뚝뚝한 듯한 모습에서도 안으로 숨겨진 진솔하고 깊은 정이 보여지고,
변종일의 재담과 순진한 모습에서 여린듯한 모습을 보며,
정우식의 듬직하고 티나지 않게 배려하는 신중한 멋이 느껴지고.
박윤시의 온화한 부드러움 속에서 자신과 가족의 관리 능력의 탁월성을 보며,
장석표의 불의와 타락한 세상에 대해 분노하는 혈기왕성함에 감탄하고
장재경의 주관이 너무 강한 모습이 까칠하게도 느껴지나 의지가 굳고 남자로써의 덕목이 큰 사람으로 보인다.
친구들의 좋은점을 살펴보며 마시는 막걸리는 달고 시원하다.
長(장)安(안)산의 평온한 기운이 몸과 마음에 스며든다.
하산 길에선 후미의 여유로움을 즐긴다.
억새숲 속 작은 단풍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는다. 윤정로 후배가 특별히 예쁘게 찍어드린다 했으니 함 믿어보자.
금산 수삼센터엘 들려 강병희씨의 여동생이 선물한 수삼 튀김과 인삼 막걸리를 얻어 차안에서 즐거운 뒤풀이가 시작된다.
이무성선배의 재치있는 재담은 수삼 튀김과 함께 훌륭한 안주감이다.
이렇게 건강한 선배님들이 계심으로써 우리 군성 산우회가 즐겁고 화기애애한 모습이지 않겠는가?
신사동에서 장향숙 총장이 먹여준 따로 국밥 덕분인가? 만추의 싸늘한 기온에도 마음과 몸이 무척 따뜻함을 느낀다.
귀가 길에 하늘을 올려 다 본다. 별 몇 개 떠 있는 하늘엔 가을이 가고 있다.
가슴 저미는 추억만 남기고 모른 체 돌아서고 있다. 가을이, 또 세월이.
2011, 11, 21
'산행기 >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괘방산과 정동진 푸른 바다 (0) | 2012.01.17 |
|---|---|
| 선배님들과의 관악산 송년 산행 (0) | 2011.12.12 |
| 새들 따라, 쉬었다 온 조령산 (0) | 2011.07.19 |
| 가리산 정상에서 (0) | 2011.05.18 |
| 전국 군성 합동 산행(예천 비룡산, 회룡포) (0) | 2011.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