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들과의 관악산 송년 산행
연주암 넓은 뜰에서 올려다 본 맞은편 산등성에 곰이 한 마리 있다.
조그만 입술을 뾰죽 내밀고 산 정상을 향하여 힘겹게 오르는 모습이다.
봄 여름의 무성한 나무 이파리에 가려져 있던 곰이 초겨울의 쓸쓸한 바람과 옅은 햇살에 모습을 선명히 드러내고 있다. 잎 떨 군 허허로운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정경이라고 이 무성 선배가 일러준다.
이렇게 텅 빈 겨울산 에서만 만날 수 있는 곰이 다정스레 느껴진다.
다정스럽고 따뜻함이야 어디 곰 뿐이겠는가?
오늘 아침 약속 장소를 잘 못 알고 20여분이나 늦게 나타난 나를 환한 웃음으로 맞아 주신 선배님들의 마음도 고맙다.
보내 온 문자를 과천 정부 종합청사역을 과천 대공원역으로 잘못 읽은 나의 불찰이 많이 부끄럽다.
머릿속에 입력된(과천 대공원역에서 만나 산행한 기억) 무의식적인 반응에 성급히 결론 내린 나의 부주의함이 불러온 착시 현상인가?, 아리송한 느낌이 오래 머릿속에 머문다.
왠일 인가? 모두들 술을 끊으셨나?
술이라곤 이일순 선배님이 가져오신 참이슬 달랑 한 병 뿐이다.
진기한 약술을 잘 가져오시는 이상준 선배님의 배낭도 굳건히 닫혀있다.
헌데 웬걸, 한잔씩 받아 들고 ‘송년을 위하여’ 건배를 하자말자 쭉 들이키는 폼에 쯥쯥, 캬하아, 술 넘기는 소리도 다양하다. ‘술을 안 끊으셨군,’ 안도감에 슬쩍 웃음이 난다.
“선배님, 왜 라면을 두 개나 갖고 오셨어요?”
군침을 삼키며 뭇는 나에게 “예쁜 사람에게 하나 줄려구요.”하시는 이정용 선배님, 멋쟁이!
이 상건 선배님이 갖고 오신 비아그라 김치가 인기다.
잘 익어 맛도 있지만 김치 이름이 탐나선지 분주한 선배님들의 젓가락에 금세 동이 난다.
하산 길은 능선길이라, 산의 숨은 모습을 살펴 볼 겨를이 있다.
속살을 드러낸 겨울산, 더 깊고 푸근한 느낌이다.
팥배 나무의 앙증스런 열매와 오리나무의 하늘거리는 꽃대도 어여쁘다.
지난 봄 산행 때 화사한 꽃그늘에 앉아 사진을 찍었던 진달래나무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박이환 선배님과 기념으로 한 장 찰칵.
이름답게 큰 바위와 돌들이 많은 산, 발목이 뻐근해진다.
사당역에서 최상호 선배님과 조우하여 목동 향숙정으로 향한다.
우리의 만능 재주꾼 향숙이의 일터 겸 놀이터인 그 곳엔 갖가지 음식과 다양한 주류가 준비되어 우리를 맞이한다.
김일두 선배님이 먼저 와 계시고 23회 박현숙 후배도 와서 향숙을 거들고 있다.
18회 김두영 후배가 보내 온 양주는 모두의 마음을 훈훈하게 덥혀와 화기애애한 송년 잔치가 벌어진다.
향숙이의 즉흥 난타 공연과 손수 끊인 추어탕(김이원 선배는 무려 다섯 대접을 드셨음)이 압권이다.
밑바닥에 두어방울 남은 죠니워커 슬링에 커피물을 부시어 위티를 만들어 드신 분은 바로 최상호선배님.ㅎㅎ
칠순 잔치에 칠순이란(늙어 보인다고) 이름 안 부친다는 10회 선배님들,
우리도 곧 칠순 잔치 한다고 으스대는 12회 선배님들,
어느 쪽에 박수 쳐야 될지 모르는 나, 15회.
첫눈이 내리려나? 괜시리 깜깜한 하늘을 쳐다보는 12월 상달의 하루가 저문다.
'산행기 >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겨울 산행의 즐거움(빌려 옴) (0) | 2012.02.04 |
|---|---|
| 괘방산과 정동진 푸른 바다 (0) | 2012.01.17 |
| 가을을 보내는 산행 (0) | 2011.11.21 |
| 새들 따라, 쉬었다 온 조령산 (0) | 2011.07.19 |
| 가리산 정상에서 (0) | 2011.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