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밤에 꿈결인 듯,산 내음을 맡은 듯 하여 눈 뜨자 마자,아, 오늘 산엘 가야겠다, 결심을 하고, 그럼 누구와 갈까? 어느 산엘 갈까?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다 그래, 오늘은 나 홀로 가 보자. 오케이! 하얗게 분 바르고(그을지 말라고) 또 초록색 아이섀도우 칠하고(산 색깔에 맞추어) 집에서 가까운 아차산엘 올라 (정말 야트막하고, 편안한 길이네)
정상을 조금 비껴 난, 산 나무 그늘에 앉아 메세지부터 날렸다.(딱 10명)
"여기는 아차산 정상, 그대는 지금 어디에?"
바로 답신이 온 친구가 여섯, 나머지 넷은 소식 감감이다.(요시, 앞으로 같이 놀아 주나 봐라.)
사과를 깎아 먹고 있자니, 부스럭 인기척을 내며 청설모가 앞에 와 빤히 쳐다 본다.그래, 너도 조금 먹어 봐. 한 조각 던져 주니 무지 맛있게 먹어댄다. 덜 외롭네...
그러고 보니, 혼자 놀아 본지가 무척 오래 된 것 같다.항상 누구든 옆에 있어야만 된다고,그래야 외롭지 않다고 느껴 온 나는 철부지인가?
그런대로 생각도 많이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행복감도 조금 느껴지니 오늘 산행은 성공이다.
방금 메세지 한 통 오누나."나 지금 옛 교정 경희궁 떼라스에서 치즈케익 커피 앞에 놓고 그댈 생각하네." 참말이든, 거짓말이든(날 생각한다는) 기분은 좋다.
조금 멀리서 하모니카 소리가 들린다. 산에 와서 하모니카 부는 남자? 낭만적이다.30여년 전, 대림동 살 때 이웃이며 고향 선배이던 P선생님이 생각난다.문학과 낭만이 있으면, 라면만 먹어도 삶은 풍요롭다고 떠드는 나를 무척 좋아하셨는데, 심장이 아파 돌아가신 지 벌써 15년이 흘렀다. 비 오는 날, 하모니카를 애절하게 불던 그 분이 그립다.
엉덩이가 저려온다. 돗자리를 가져왔으면 누울텐데....(한심하다. 산에 와서까지 꼭 늙은 티를 낸다니까.)
어머나! 생강한과의 단내를 맡은 작은 개미들이 바글거린다. 그래, 너희들도 같이 먹자구나, 냠냠.
정말 고요하다.산새 소리도없다. 포르르 포르르 날아 다니는 산파리, 산벌레들의 움직임만 느껴진다.
오늘은 바람도 잠 잔다. 고즈녁하구나.
봄 꽃들은 빛이 되어 모두 흩어지고, 싱그러운 신록의 내음만이 가득한 5월의 산에서,나는 나의 나무 한 그루를 안아 본다.그리고 말을 건넨다. "나무야, 나를 기대게 어깨를 내어주니 무척 고맙구나."
세상의 잡다한 것을 훌훌 턴 마음의 자리에 나무 한 그루를 심고,
자! 이제 하산이다.
<붙임> 산을 내려오다 "아차산 작은 음악회"를 만났는데, 거기서 노래 한 곡을 가슴에 담았다.
-나 그대에게 드릴 말 있네.
오늘 밤 문득 드릴 말 있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 내 마음을....-
비우러 산에 가서 다시 담아오는 이 심사는? 누가 여자 아니랄까 봐.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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