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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금수산의 눈길 / 오태동의 아름다운 산하(1)

여해와담헌정 2013. 5. 9. 11:15

 

 

-금수산의 눈길 (2010년 1월 15일)/ 오태동의 아름다운 산하(1)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눈이 많았다.

손자 놈이랑 집안에만 박혀 있다가 모처럼 풀린 날씨라 몸을 빼냈다.

녀석이 제맘대로 걷기 시작하면서 체중이 감당하기 점점 힘들어진다.

아내를 재촉하여 눈길을 나섰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겨울 산길, 사박사박 눈에 박히는 발걸음 소리가 좋다.

세상을 씻어낸 흰눈의 기운이 온몸으로 번진다.

열이 나면서 목도리를 풀고 점퍼의 지퍼를 내렸다.

얼어 죽기라도 할까싶어 채비를 많이 했는데 걷다보니 짐이다.

 

적성면 상학골주차장에서 출발하여 남근바위를 지나간다.

돌로 깍은 큰 고추 작은 고추를 노골적으로 세워놓았다.

빌면 아들 낳을까, 딸을 더 좋아 하는 세태를 어찌 모르는가.

볼거리라고 제법 돈을 들였을텐데 세운 장소나 모양이 좀 은근했으면 싶다.

등산로 한가운데 우뚝 선 남성의 가운데를 세워놓은 게 조금 민망스럽다.

여성의 얼굴 모습을 한 금수산 미인봉에 대한 조화의 상징으로 쳐도 표현이 지나친것 같다. 

이런 토템으로 바람 길이 다소 부드러워진다면 다행이겠지만...  

전설이나 신화는 그것을 감싸는 옷이 격에 맞아야 뜻이 산다.

때와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지나친 과장은 오히려 흉물이다.

돌의 형색으로보면 오래된 것도 아닌데 좋은 장소에 너무 성급한 연출을 한게 드러난다.  

문화란 돈과 시간에 쫓기면 천해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 눈 위에다 하트 모양을 그렸다.

사랑하는 이를 그리며 어느 젊은이가 흰 눈에 새해 소망을 새기고 갔을까?

한 참 가다보니 이번엔 눈 위에 ‘대박’이란 두 글자가 힘차다. 

장사가 어려운 가게 아저씨가 올해엔 어찌 돈 좀 만져보자는 염원을 눈 위에 그렸을까?

어떤 노총각이 장가 꼭 가려는 다짐으로 금수산 산신령께 바친 기도였을까?

이게 제대로 된 시화(詩畵)다.

햇빛이 비추면 얼마 후 사라지겠지만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예술이란 어차피 사라지는 것에 대한 그리움. 그 그리움 조차도 결국은 사라지고 만다.  

눈길 위에 남긴 발자국처럼 그렇게 눈에 묻히고 녹고 자취를 감추는 것이다.

 

산길에 세워 둔 지도판에도 샘터라 이름 붙어 있는데 하나같이 말라있다.

정상을 올라가며 샘터가 셋이나 있는데 물기가 마른지 오래다. 

돌산이고 경사가 가파르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마지막 샘터엔 몇 년이나 지난 수질검사표가

그대로 붙어있다. 관리가 없다.

대체로 1년에 한두 번쯤은 수질검사를 할텐데 어쩜 예산이 바닥이 났었나, 

차라리 빛바랜 수질검사표라도 떼어내고,

‘죄송합니다. 요즘엔 물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하고 쪽지라도 한 장 붙여놓았으면 좋았을 걸.

가져온 물로 목을 축이고 가파른 돌길을 오른다.

 

아내의 몸이 전같지 않는 모양이다. 

뒤를 따라오는데 산이 곧추서자 백보에 한 번 쉬더니 쉼이 오십보로 잦아졌다.

그나마 포기하지 않고 쫓아오는 의지가 아직은 살아있다.

능선에 올라서니 기다렸다는 듯 일시에 바람이 반긴다.

바람소리, 앞섶을 다시 여미지만 이 적막 산중에 바람이라도 반겨주니 외롭지 않다.

멀리 가까이 흰 산들이 줄을 섰다.

산의 끝자락 충주호로 이어지는 물길도 하얗게 얼었다.

옥양목 단을 펼쳐놓은 강바닥에선 먼저 녹은 물빛이 흔들린다. 

 

산과 물의 절묘한 조화를 보려고 금수산에 오른다.

與山與水, 산과 물이 함께하여 

如山如水, 산같고 물같은 마음이 된다.

 

갑자기 바람소리가 거칠어져 바로 하산을 했다.

내려오는 산길이 오히려 조심스럽다.

군데군데 녹다말다한 곳이 미끄러워 아이젠이 박힌 등산화로 몇 번씩 바닥을 찍으며

걸음을 옮긴다. 

혼자 걷기에도 좁은 비탈길을 한 걸음씩 떼어 놓는데 아슬아슬하다. 

한참 내려오니 집체만한 바위가 버티고 있다.

치성을 드린 흔적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가 신령바위.

바위 앞 양지 바른 곳에 배낭을 풀었다. 

배도 고프니 여기서 조금 쉬었다 가자.  하느님, 신령님 보호하사.

 

이 큰 바위는 어떻게 신령이 되었을까?

그 자리를 묵묵히 오래 지키왔기 때문이리라.

시간의 길이에 비례하여 생성되는 존경심, 이걸 시간의 우상이라 한다.

오랜 세월 시간의 길이는 바로 지혜의 집적이었고 권위의 근거었다.

모든 장로사상은 바로 이런 시간성의 기초 위에서 나왔다.

아버지보다는 할아버지, 할아버지보다는 느티나무, 느티나무보다는 늙은 소나무,

그보다 더 긴 시간을 버텨온 저 바위의 존재는 역시 장엄하다. 

연륜에 따라 지혜의 깊이가 다르고 신령조차도 작은 신령 큰 신령으로 나뉘었다. 

시간의 집적에서 하늘은 곧 영원이다.

그래서 하느님이고 천주며, 옥황상제다. 

 

지금은 시간의 우상이 점점 힘을 잃어간다. 

노인의 기침소리는 존재감보다는 헛기침 소리일 뿐이고 

수염에 권위가 사라지자 모두들 깔끔하게 밀어버렸다.

역으로 젊은 힘이 희망과 기대의 상징이 되고 권위가 되었다. 

흰머리에 염색을 할까 말까 이발소에 갈 때마다 고민을 한다. 고뇌라고 해도 좋다.  

노트북을 사다놓고도 이것 저것 물어봐야 뭐 하나라도 해결이 가능한 나는

젊은 아들 앞에 작아질 수 밖에 없다.

때가 오면 손주놈 앞에서 더 주눅이 들지도 모른다.

시간에 관계없이, 아니 시간의 길이에 비례하여 더욱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시대에 살고있다.  

 

변화하는 시대의 넉두리를 신령바위에 내려놓고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니 네 시간이 지났다.

            아내는 금수산 정기를 받았다며 올라갈 때와는 달리 자신만만해 하니 다행이다.

        그래, 이 기운으로 올해 우리도 대박 한 번 터트려볼까.

 

       

         (2013년 5월, 옛 글을 다시 보니 그간 산촌에 산다는 이유로

                           산에 올라가지 못한 게 너무 오래되었다.

                           바쁜 일 제쳐놓고 이 5월엔 꼭 한 번 오르리라.)

  

 

 

 

출처 : 군성18
글쓴이 : 금수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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