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이야기

유행가를 부르고 싶은 밤

여해와담헌정 2011. 7. 26. 17:06

 

 유행가를 부르고 싶은 밤                                            

                                                                 

                                                                 김 정연

 문득 소진(小珍)이 그립다.


 소진(小珍)은 수필가 김 규련 선생이 지어준 그녀의 아호이다.

"박기옥의 몸집은 아담하고 작아서 작을 소(小)가 나타나고, 내면에는 빛나는 예지와 냉철한 지성, 그리고 향기가 묻어나는 감성이 보배 '珍'으로 느껴져서..."란 주석을 붙였다.

 

 기옥은 나와 대학교(대구 효성 여자 대학)때 학보사 동지이다.

 그녀는 불문학을 전공하였고 나는 약학과였다.

 적성과 감성에 맞지 않는 약학 공부가 싫어 나는 주로 오후에 있는 실험시간에 뺑소니를 쳐서 일찌감치 수업이 끝나는 기옥과 어울려 영화 구경을 간다든지 아님 동성로에 있는 동문 다방에 가서 음악을 듣고 노닥거리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2학년인 그때 그녀는 벌써 연애를 하고 있었다. 상대는 고2년생인 여동생의 담임선생이었다. 백 선생은 수학을 가르치는 키가 무척 껑충하니 큰 분이었다. 기옥은 그의 어께에도 못 미치는 작은 키다. 앞서 걸어가는 두 사람을 보며 참 희한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사랑에는 키의 발란스는 아무 것도 아니구나.’하고.

 그런 두사람의 사랑에 샘이 난 우리가 (또 다른 두명의 학보사 동지가 있었는데 남 잘 되는 꼴을 도저히 못 보는 악동들이었다.) 

 “제자의 학습 지도, 또는 품성 지도라는 명목 하에 학부모를 이래 꼬셔도 되는 겁니까? 만약에라도 학교에 이런 소문이 난다면....” 은근히  협박을 할라치면 “아이구 사랑에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좀 봐 주이소.” 하며 백선생은 단번에 백기를 들고 우리들 앞에 밥이랑 생맥주를 대령하곤 했다. 어디 밥과 술 뿐이겠는가? 영화 구경은 물론 드물지만 가끔 오페라 티켓 까지도. 사람 좋은 순수한 심성을 가진 그는 시쳇말로 우리의 ‘봉’이었다.

 졸업 하던 해에 기옥은 백선생과 결혼하여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낳고 10여년 남짓 행복한 생활을 했으나 간(肝)이 나빠진 백선생이 허망하게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홀로 애들 키우며 사회생활을 열심히 하는 그녀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기를 30여년, 작년 3월, 책을 낸다는 연락을 받고 대구에서 열리는 수필집<<아무도 모른다>>출판 기념회엘 갔다.

 사교적이고 성실한 덕택인지 지인들이 많이 참석해 그녀의 책 출간을 축하해 주었다. 축가를 불러주는 이도,  바이올린을 연주해 주는 이도 있었다.

 백 선생을 빼다 박은 그녀의 아들이(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레지던트로 근무 )엄마를 에스코트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가슴이 몹시 설렙니다. 누군가 저에게 '수필을 왜 쓰는가?'라고 물으면 '행복하니까'라고 대답합니다. 수필 한 편을 쓰고 나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찾아오는 누구라도 덥석 안고 싶어지고, 방안으로 날아든 하루살이 나방에게도 입맞춤하고 싶어집니다."

 발그레한 홍조를 띠고 그녀가 인사말을 할 때 모두들 작은 웃음을 날리며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쳐 주었다.

 잠깐 아들을 데리고 내 곁에 오더니 "지 아부지보다 낫제? 의사가 되었으니 건강은 잘 지켜 내 곁에 오래 안 머무르겠나."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소진(小珍)의 수필집을 펼쳐 <유행가처럼>을 다시 읽는다.


술을 조금 마신 탓일까. 가사 하나하나가 나의 심장을 찔렀다. 사랑이 뭐 별건가. 필요 할때 무조건 달려가는 것이 아니던가.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둘도 없는 그 명쾌한 해답이 나를 울리고 말았다. 너무 멀리 있어 볼 수도 없고 너무 높이 있어 만질 수도 없는 사랑에 갇힌 나를 위하여 이름 없는 가수가 노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달려오는 것이 사랑이라고.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조건 달려 갈 수도 무조건 달려 올 수도 없는 세월이 너무 길었던  친구를 위하여 정 훈희의 <꽃밭에서>를 목청껏 불러보고 싶은 밤이 깊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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