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뭐하나? 시간 되면 만날까?"
여름 장마기라 환자가 별로 없어 안그래도 몸과 마음이 주리를 틀고 있던 차에 받는 친구의 전화는
반갑다 못해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기분이다.
"시간 많다. 네게 다 줄께. 어디로 갈까?"
"마야에서 보자."
'마야'는 동부 이촌동에 있는 작은 술집이다.
전혀 꾸미지 않은 수수한 모습의 아줌마 둘이 얼음을 내어 주고
안주라곤 고추장에 찍어 먹는 멸치와 건과류 두서너 종류. 가끔은 튀긴 강냉이가 나올때도 있다.
친구가 먹다 보관해둔 술은 삼분의 일도 채 안되게 남아 있다.
"에게, 요것 밖에 없어? 아껴 마셔야겠다." 약간 풀이 죽은 목소리로 내가 말하니
"걱정 마, 새 병 따면 되지." 생긴 건 예쁘장하니 천상 여자인데, 이 친구 말하는 뽄새는 꼭 남자 같다.
얼음 띄운 술을 앞에 두고 노래를 청한다.
'마야'엔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은 다 있다. 팝송이든, 유행가든, 가곡까지도.
옛날, 우리가 청춘이었을때 즐겨 듣고 부르던 노래는 LP판으로 틀어준다.
트리오 로스 판쵸스의 <베사메 무쵸>가 들리더니 펄 시스터즈의 <새드 무비>가 나온다.
어께를 약간 흔들다, 발 장단을 맞추다, 장사익의 <찔레꽃>노래엔 아예 따라 부른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장사익은 찔레꽃 향기가 슬프고 나는 그의 노래가 슬프다.
친구가 얘기한다.
오랜 옛날에 장사익이 세차원이었었는데 옅은 베이지 색의 친구차를, 색갈이 너무 예뻐서 정성스레 닦아준다던 사람이었다고.
살며시 눈을 감으니,후주레한 작업복 차림의 장사익이 입속으로 무슨 노랜가를 흥얼거리며 열심히 차를 닦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얘기한다.
두달 전 한국 산문 총회에 와서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게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면 꽃이 집니다.'를 두 팔 내 저으며 애절하게 노래 부르던 몸짓과 웃을때 천진난만하게 주름 지던 그의 모습에 대하여.
내 친구가 눈을 살며시 감고, 환호하는 팬들에 둘러쌓여 눈과 코와 입이 한꺼번에 웃던 그의 행복한 모습을 본다.
그리고 우리는 같이, 고난했던 그를, 행복해 하는 장사익을 그리워한다.
음악이 흐르고 술 향내가 부드러운 '마야'의 밤은
하염없이 비에 젖는다.
우리의 마음도 정처없는 그리움에 하염없이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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