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이야기

濯足女心

여해와담헌정 2010. 7. 23. 11:43

 濯 足 女 心 


                                                   김 정연

 산을 내려오다 중간쯤,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근다. 무더운 여름 한낮의 등산 피로가 한순간에 가신다. 맑게 흐르는 물에 담긴 내 작은 발, 내가 봐도 참 예쁘다.


 "어머님 발이 너무 예뻐요. 자그마하고."

 제약회사에서 선물로 받은 족탕기가 몇 년째 제 구실을 안 하고 방치되어 있는 걸 며느리가 따뜻한 물을 채워 와 나의 발을 마사지 해 주며 하는 말이다. 원래 발을 잘 사용하는 나는( 작은 물건이나 옷 또는 수건 같은 걸 손으로 집지 않고 꼿꼿이 서서 발가락으로 집어 올린다.) 며느리의 발 마사지 효도에 무지 감격하고 행복해 그저 입이 헤 벌어지는데, 칭찬까지 듣다니. 친정아버지, 또 친구들 심지어는 구두 매장의 직원들 까지 내 발을 이쁘다 하노라 하며 더욱 우쭐 댄다. 명절 음식 만드느라 고단하고 지쳐 있던 나의 몸이 봄날에 눈 녹 듯 사르르 풀린다.

 처음 며느리가 발을 씻어드리겠다 했을 때, 왠지 미안하고 어색하여 사양했으나,  스승의 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어 보니 그렇게 친근해질 수가 없더라는 며느리의 말에 "그래 그럼 교대로 씻어 주자."하고 응했었다. 요즈음은 스승과 제자, 직장의 상사와 부하 직원들, 또 학교에서 친구들끼리도 서로 발을 씻어주며 마음을 열고 정을 돈독히 하는 행사를 많이들 하고 있지 않은가?

 정말 내가 며느리의 발을 씻어 줄 때 따뜻하고 소중한 마음이 생기며 스킨십을 통한 사랑의 감정이 피어올랐다. 신체의 제일 아래 쪽, 보기엔 하찮은 부위인 발을 소중히 어루만져 주는 그 갸륵함에서 느끼는 친밀감이라니. "발이 좀 길고 칼 발이지만 예민해 보이네." 칭찬인지 흉인지 모를 말을 애매하게 하여 며느리를 부끄럽게 만들었지만, 발 마사지 덕택인지 나는 우리 며느리를 최고로 여긴다.

 

 발은 사람의 신체, 즉 오장육부와 연결되어 있다. 피가 심장에서 온 몸으로 돌아 다시 심장으로 돌아가는 U턴 지점이 발이다. 발의 모양과 색깔에 따라 그 사람의 병력과 노화의 정도를 알아볼 수가 있다.  신장과 간장이 약해지면 발가락이 누렇게 변하고 엄지발가락은 뇌하수체, 2,3번째 발가락은 눈과 관계가 있다. 또 혈액순환이 잘 안되어 발이 차지면 냉증에 괴롭힘을 당하고, 주로 여성들이 앓는 병이다.

 인체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발바닥에는 각 장기에 상응하는 반사구들이 모여 있어 이를 자극하면 , 즉 경혈을 풀어주어 병을 예방하고 면역력을 높이며 잘 마사지 해 주면 치료가 되기도 한다.

 옛날 우리나라 결혼 풍습에 새신랑 발바닥 때리는 것이 있다. 신부 집 취객들이 묶어 놓은 신랑의 발바닥을 납작한 막대기로 때리면 “아이쿠, 나 죽네.” 하고 신랑이 비명을 지른다. 놀란 신부가 울 쌍을 짓고 있으면 괜히 술이 모자랍네, 안주가 부실 하네 , 또는 신랑에게 뽀뽀를 하라는 둥 짓궂게 놀려 먹는다. 재미있는 놀이도 되지만 다른 의미론, 발바닥의 용천혈을 자극하는 것이다. 용천혈은 신체의 신(腎)과 연관이 있고 그걸 자극 하므로써 성기능을 강화 시키는 일종의 마사지 요법이라 할 수 있다. 긴장한 어린 신랑의 남성을 강화 시키고 신랑이 당하는 고초에 애처로운 마음이 싹튼  신부의 모성애가  신랑을 포근히 감싸는 분위기에서 치르는 초야(初夜)는 더욱 아름다운 밤이 되지 않았겠는가? 옛 우리 선조들의 깊은 배려가 참으로 지혜롭다. 


  10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님의 발을 한 번도 씻겨 드린 적이 없는 내가 후회된다. 그 분의 발은 티눈이 여러 개 박혀서 약으로 안 되어 병원 가서 수술로 제거 하였다. 시어머님은 전형적인 옛날 분이어서 여자란 일 잘하고 애들 잘 키우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 하시던 분이었다, 친정에서 너무 귀히 자란 내가 약국이나 한답시고(시어머님의 표현) 집안의 큰 일거리, 일테면 메주 만들어 장 담그기, 김장하기, 일 년에 여덟 번 치르는 제사, 또 팥죽 끓이기 등을 소홀히 생각하고 잘 하지 못한다며  언잖아 하셨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 어머님이 야속해  별로 가까이 하지 못했다. 그때 내가 어머님의 발을 씻겨드리고 혈액 순환제(티눈은 발의 혈액 순환이 잘 안 될 때 생긴다.)를 열심히 드리곤 했으면 나를 어여삐 여기셨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 같다. 일은 잘 못하지만 애정과 섬기는 마음으로 당신의 발을 만져주는 며느리가 기특하고 사랑스럽지 않았을 리가 없다. 어릴 때부터 사랑을 받는데 만 익숙한 나는 남에게 먼저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성격이다. 나이를 먹고 또 내가 시어머니가 되고 보니 그 분의 마음도 조금씩 이해가 되어 살갑게 구는 며느리가 되어보고 싶으나 이미 어머님은 저 세상으로 가 버리셨으니 아쉬움과  죄송스런 마음이 크다. 

 

 “할머니가  발 씻겨 줄게.”

요즈음 난 손주들의 토실하고 귀여운 발들을 씻어주는 일등 선수가 되었다.

비누칠을 하여 살살 문지르면 간지럽다고 키득거린다. 나도 즐겁다. 사랑과 정성을 다하여 내가 그 애들의 발을 씻어 주는 회수 만큼 그 애들이 힘차게 잘 살아가게 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씻는다.

 그 애들이 커서 나를 발 잘 씻겨주는 할머니로 기억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  


                               2010,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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