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목에 대한 추억
김 정연
봄 비 내리는 날, 약국에 있는 화분을 모두 바깥에 내어 놓는다. 겨우내 답답한 실내에서 겨우 갈증만 해소하고 견디던 나무 이파리들이 푸르게 생기를 되찾는다. 벤자민과 관음죽 그리고 소철은 10여년 동안 내 곁에 있으면서 제때제때 물을 안 줘 목마를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을 텐데도 게으른 주인에 대한 원망도 없이 잘 자라고 있는 것이 고맙다. 천리향과 연산홍과 손가락 선인장은 작년 봄, 여름, 가을에 꽃을 피워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었다. 대여섯 분 되는 난도 번갈아 가며 꽃을 피워 약국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들었다.
옆 가게 분양 사무실이 이사 가며 주고 간 귤나무는 왕성하게 자라 나의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나무가 되어 있다. 게다가 작은 가지마다 올망졸망 맺은 꽃 봉오리가 수백 개가 되는 것 같다. 성급한 어떤 녀석은 벌써 꽃망울을 터트려 하얗고 자그마하게 앙증맞은 모습이 꼭 배꽃을 닮았다. 코끝을 살며시 대고 맡으니 향내도 진하다. 활짝 피운 꽃들이 지고 나면 그 자리에 귤(더군다나 한라봉)이 열릴 것인즉 꼭 하나씩 달라고 예약한 손님들이 여러 명이다. 관리실 아저씨, 청소 아줌마, 또 윗 층 병원의 사무장, 심지어 약 사러 오신 손님들까지. "당연히 드리지요." 나는 흔쾌히 인심을 쓴다. 가게에서 이런 유실수를 잘 키우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하는 우쭐한 기분으로.
허나 지난 겨울 내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 나무가 몇 그루 있다. 행운목이다. 장안동에서 월계동으로 약국을 이전하며 가져온 한 그루와 여기 개업식 때 선물 받은 두 그루가 모두 죽어버린 것이다. 잎이 누르스름 마르고 나무통도 윤기 없이 꺼칠한 모습을 하더니만 뿌리를 뽑아 보니 이미 생명이 다하여 바짝 마른 상태였다. 마음이 아팠다. 오랫동안 나와 함께한 행운목은 나에게 별다른 사연도 있었기에.
2003년 가을,
아침에 약국에 나오니 행운목 꽃가지가 싹둑 잘려져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었다. 깜짝 놀라 누가 이랬냐? 고 추적해보니 범인은 남편이었다. 극심한 분노와 함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우리 약국에서 7년 동안 한 번도 꽃을 피우지 않던 나무가 그 가을에 꽃망울을 맺어(작은 가지에 초롱초롱 달린 모양이 꼭 아카시아 꽃 같음) 이제나 저제나 언제 꽃이 필까,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꽃이기에 남모른 기대감을 갖고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더더구나 큰아들이 행정고시를 보려던 해 아닌가!
전화로 따졌다. "왜 피지도 않은 꽃가지를 잘랐나? 내가 얼마나 꽃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줄 알고나 있냐? "고 하자 그 남자 왈 "다 핀 꽃 아닌가? 그리고 잘라도 될 것 같아 잘랐는데 뭐가 잘못됐나?" 잘못이 없다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했어도 내가 보따리를 싸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원도 평창으로 차를 몰았다. ' 그래, 나 없이 잘 해봐라. 30년 동안 애 낳고 밥 해주고 약국 보느라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살아왔던 세월이 억울하다 억울해, 고집불통에다 맨날 천날 된장찌개나 좋아하고‘. 난 남편의 단점과 허물을 있는대로 읊으며 난생 처음 하는 가출에 ( 아니 탈출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신이 나서 액셀레터를 막 밟아 댔다.
금당 계곡,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참 들어간 '산새 소리' 라는 펜션에 몸을 누이니, 갓 물들기 시작한 단풍의 어여쁜 미소와 바위를 치며 콸콸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또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 까지 어우러져 모두 나의 가출을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모든 잡다한 일상의 번잡을 털어버리고 혼자서, 오직 나 홀로 느끼는 자연의 숨소리와 자유스러운 정신의 가벼움에 작은 흥분감도 일었다.
첫 밤을 지내고 아침에 핸드폰을 켜보니 수도 없이 전화가 와 있었다. 약국, 집, 아들, 심지어 시집간 딸애의 전화도. '많이 답답한 모양이지? 애 좀 먹어봐라.' 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인근 봉평에 있는, 평소 내가 좋아 하던 ‘이효석 문학관’ 으로 가서 작가의 체취를 느끼고 가을볕의 따사로움에 몸을 맡기는 유유자적한 한가로움을 맘껏 누렸다.
두 번째 날의 밤, 산간에 어둠이 내리고, 자유로운 해방감에 한껏 낭만을 느끼며 서너 잔 마신 와인이 문제인가? 나의 가슴에 뭔지 모를 작은 동요가 일었다. 숲을 흔들며 부는 바람과 검게 일렁이는 나무들의 모습이 내 마음에 적막감을 안겨다 주며 조금씩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 되었다. 이틀 동안 팽개친 약국 일도 걱정이 되며, 더욱이 큰 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아 눈물이 났다. '내가 좀 심했나?' 모르고 한 일을 가지고 너무 몰아 부친 나의 옹졸함도 뉘우쳐지고 별 탈 없이 살아온 나의 삶에 고마움을 느끼긴 커녕 더 큰 욕심을 부리는 것 같아 자책감도 들었다. 방문 문고리가 허술한 것이 신경이 쓰여 고스란히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날이 밝기가 무섭게 서울로 향하였다. 엄청 초췌해진 모습으로.
집에 들어서는 나를 보고, "어디 갔더노? 별일 없었나?" 묻는 남편과, 엄마 걱정 많이 했다는 아들들의 반김에 나는 짐짓 마음을 푸는 척 "나 없어도 잘 살고 있네. 수 틀리면 또 나갈지도 몰라." 하고 입속에서만 큰소리를 쳤다.
그 다음해 신기하게도 행운목은 다시 꽃을 피웠으며 꽃이 시들어 말라 볼 폼 없을 때까지 남편은 못 본체 했다(꽃나무 가꾸기는 남편 몫인데도). 행운목 꽃은 굉장히 강하고 달콤한 향기로 나를 아찔하게 만들기도 하였지만 큰 아들이 시험에 합격하는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그런 사연을 갖고 있는 나무이기에 뿌리를 뽑으며 더욱 애석한 마음이 들었다.
허나 법정 스님이 <<무소유>>에서 쓴 구절에 나는 심히 부끄러워진다. 애지중지 하시던 난 화분 하나를 어느 지인에게 줘 버리니 그렇게 홀가분하고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애착을 버리고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이 바로 무소유의 삶 아니 겠는냐는 말씀.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 나무를 잃어버림에 이리 미련을 갖고 서운해 하다니 나의 세속적이고 마음속에 가득 찬 욕심을 보며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느껴진다.
난 언제 스님의 행하심인 맑고 향기롭게 비우는 삶을 살 수 있을까?
2010,3.
'그룹명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백구를 따라 가셨나요? (0) | 2010.07.26 |
|---|---|
| 濯足女心 (0) | 2010.07.23 |
| 백구를 따라 가셨나요? (0) | 2010.07.07 |
| 어버이 날에 (0) | 2010.05.08 |
| 변덕부리는 봄날 (0) | 2010.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