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산행기

깊어지는 山

여해와담헌정 2012. 5. 21. 19:34

산 초입에서 진한 향내가 콧속에 스며든다. 찔레꽃이다.

'하얀꽃 찔레꽃

순박한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장사익의 구슬프고 애절한 노래가락이 마음에 들린다. 몇걸음 지나친 길을 다시 내려와 찔레꽃, 순박하게 생긴 찔레꽃에 코를 갖다 댄다. 왜 찔레꽃을 별처럼 슬프다고 했을까? 너무 멀리 아득해서? 아님, 졸듯이 깜빡거리는 모양새가 초라해서인가?

 

녹음이 두터워 지는 오월의 산은 인간사에 다친 마음을 치료해준다. 나무의 연한 속잎들의 빛깔은 우리가 잃은 마음의 빛깔이다. 그 빛깔의 참 모습을 찾으러 산엘 오른다.

 

水王寺는 곧 쓰러질듯 위태한 모습이다. 이렇게 작고 볼폼없는 절도 있을 수 있는가?

허나 나는 오히려 이렇게 초라한 곳에 마음이 끌린다.

내 마음이 머물면 바로 그곳이 부처의 자리가 되지 않겠는가.

 

모악산 정상의 표지석 부근은 많이 어수선하다.

거대한 송신탑이 자리잡고  인간과 문명의 위세를 떨치고 있는듯,언짢은 느낌에 서둘러 내려온다.

 

오솔길 양쪽으로 산죽이 끝없이 이어지며  하늘을 가릴듯 울울창창 소나무가 도열한 숲길을 유심히 살핀다.

광대수염 하얀꽃이 하늘거린다.잎파리 아래 숨어핀다는 흔치않는 야생화다.

가는 봄이 아쉬운듯, 더디게 지고 싶은 철쭉 두어그루도 만난다.바랜듯 옅은 분홍빛의 꽃잎이 쓸쓸하다.

. 찬란했던 청춘이 사라지고 흐르는 세월의 아쉬움이 마음을 어지럽히는 인생의 저물녁에 선 우리의 마음도 그러하리라.

 

금산사 미륵전에 들어 부처님을 우러러본다.올라 갈때  대원사에서 뵈었던 엄한 인상이 아니고 인자스런 웃음을 띄우고 계신듯 느껴진다.  마음의 욕심을 내려놓고 겸허하게 살게 해 달라는 기도 덕택인가?

절 마당 한 켠에 500년 세월을 품고 선 배롱나무 둥치를 안아본다. 오랜 인고의 시간을 이겨낸 숭고함이 그늘을 지운다. 숱한 미물을 쉬게 했을 그늘에 나도 기대어 앉아 눈을 감는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물속을 들여다 보니 민물새우 한마리가 돌틈으로 숨어든다.

조금 전에는 풀숲에서 실날 같은 도마뱀이 스쳐가는걸 보았다.

자연의 청정함을 더럽히는 우리 인간의 이기심이 부끄럽다.

발의 먼지 보다도 마음의 먼지를 씻어야 옳은 일이다.

 

버스 차창으로 서쪽 하늘의 해가 붉다. 아니 작열하는 빨간 빛이다.

이내 저녁놀이 내리고 소슬한 바람이 불어오는 늦은 봄날에 혼탁한 도시로 향하는 마음이 슬프다.

늙은 시인의 詩에 내 마음을 놓아본다.

 

잎, 잎

 

낮은 山도 깊어진다.

비안개에 젖어 무수히 피어나는 속잎,

연하디연한 저 빛깔 사이에 섞이려면

인간의 말의 인간을 버리고

지난겨울 인간의 무엇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했을까?

핏줄에 붙은 살이 더러워 보인다, 잎과 잎 사이

벌거벗고 덜렁거릴것 덜렁거리며 서 있을수록....

 

잎, 잎, 무성하거라 무성하거라 무성하거라

한여름 山 속에 미리 들어와 마음을 놓는다.

 

        -신대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