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이야기

아련한 그리움의 맛

여해와담헌정 2010. 11. 1. 14:45

 

 콩나물 갱죽

                                                            김 정연



 “밥국 좀 끓여 보지.”

 목욕탕을 다녀 온 남편이 작은 봉지를 내밀며 하는 말이다.

 엉겹결에  받아 살펴보니, 봉지 안에는 이정록의 시 ‘콩나물’에서 묘사 되었듯이 합장하고 고개 숙인 동승의 모습으로 가지런히 서있는 1650원 짜리 콩나물이 들어있다.

 토요일 오후에 집으로 와서 일요일 점심까지 부엌에서 설거지와 씨름하는 며느리가 안쓰러워 저녁 식사는 중국집에서 시켜다 먹기로 아들하고 얘기가 다 된 터에 느닷없는 주문을 하니 짜증이 인다. “또 식사 준비를 해? 그리고 요즘 애들은 그런 꿀꿀이죽을 좋아하지도 않아.” 못마땅한 나의 반발은 들은 척 만 척 이렇게 비 오는 날은 콩나물 넣고 끓인 밥국이 최고라는 등 남편은 자신의 입맛만을 고집한다.

 “아버님이 감기 기운에 따뜻한 걸 드시고 싶나 봐요. 제가 끓여 볼께요.” 눈치 빠른 며느리가 얼른 수습에 나선다.

 방으로 휙 들어와 티브이를 켠다. 주방에선 멸치를 구워서 넣어야 비린내가 안 난다는 둥 시아버지 참견과 김치는 얼만큼 넣으면 될 까요 해쌓는 며느리의 대화가 부산하다. 못 들은 척 하고 티브이에 눈을 박고 있으려니 맘도 편치 않고 처음 해 보는 며느리의 밥국 실력도 미덥지 못하여 슬그머니 나가 내가 다시 소매를 걷어부친다.

 

 사실 콩나물 갱죽(대구에서는 밥국을 이렇게 불렀다.)은 어린 시절 내가 좋아했던 음식이다. 멸치가 우러난 국물에 참기름으로 살짝 뽁은 신김치와 콩나물 그리고 밥을 넣고 끓인 죽은 구수한 맛이 나고 재료는 조금 들어가도 양이 한껏 부풀어져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을 수 있다.

 시골 출신의 소설가 성석제는 어린 시절 먹고 자란 갱죽을 “서럽고 아련한 그리움”이라고  그의 산문집<<소풍>>에서 표현했다. 집에서 키우는 돼지밥을 얻으러 양동이를 들고 온 마을을 다녀 쌀뜨물이나 구정물을 받아 오다 얼음길에 미끄러져 그만 양동이를 엎질러 버리는 바람에 애써 얻어오던 구정물을 땅바닥에 쏟고 옷은 옷대로 버리고 너는 왜 그 모양이냐는 잔소리는 잔소리 대로 들으며 식어버린 갱죽 밥알을 씹다 보면 버림 받은 아이라도 되는양 서럽더라고 했다.

 전쟁후 50년대는 모두들 허리띠를 졸라매고 어렵게 살던 시절이라 밀가루 음식인 수제비, 국수, 죽 등을 밥보다 더 많이 먹고 살았다.

 우리 집은 형편이 그리 나쁘지 않는 편이라 밥을 주로 먹었는데, 늦가을 조금 쓸쓸한 저녁이든지, 바람이 차게 부는 겨울 저녁에 옆집에서 끓이는 콩나물 갱죽의 구수한 내음이 담을 넘어 오면 난 갑자기 그게 먹고 싶어져 엄마에게 떼를 썼다. 우리도 죽 먹자고. 다 차려 놓은 밥상 앞에서 떼를 쓰는 어린 딸을 달래다 안되면 엄마는 내 밥그릇을 들리워 옆집으로 보냈다. 마침 밥 먹고 싶던 옆 집 정순이와 나는 죽과 밥을 서로 바꿔 맛있게 먹곤 했다.

 결혼 후 반찬하기 귀찮은 날이나, 비 내리는 가을 저녁 같은 날 나는 밥국을 자주 끓였다. 처음엔 입맛이 까다로운 편인 남편이 (그는 고기와 생선  같은 건 싫어하고, 밥국에 넣는 멸치도 비린내가 난다고 구워 넣으라는 사람이며 소백산 산나물이나 찾고 허구 헌날 된장 찌개를 즐긴다. 신혼 시절 한번은 내가 열심히 솜씨를 발휘해 차려 놓은 음식을 외면하고 생마늘을 고추장에 찍어 먹길래 부아가 난 내가 다음 날 식탁에 깐 마늘 한 대접만 달랑 올린 적도 있다.) 탐탁치 않아 하더니 어느새 밥국 맛에 익숙해 졌는지 요즈음은 나보다 더 자주 찾는 메뉴가 되었다.


 불을 낮춰 서서히 끓는 밥국을 보고 있노라니, 70년대 대기업을 운영하던 김우중씨도 즐겨 먹던 음식이 꿀꿀이 죽이었다고 남편에게서 들은 기억이 난다. 그 분은 너무 바빠서 제대로 식사를 할 시간이 없는 관계로 이동하는 차 속에서 먹던 음식이었다는데, 간편하고 영양도 고루 포함된 음식이어서 좋아했는지, 아니면 나와 음식 기호가 같아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혹시 남편도 옛날 상사가 생각나서 밥국이 먹고 싶어진 걸까?

 계란을 하나 풀어 넣고 마무리를 한 밥국을 한 그릇씩 떠 주니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다.

별로 안 맵게 했더니 손주 녀석들도 제법 잘 먹는다.

 “할머니, 왜 꿀꿀이 죽이예요?” 먹다 남긴 여러 가지 음식 재료들을 모아 끓인 죽이라서 꿀꿀이란 이름을 붙인 듯 하지만 난 손주에게 그럴듯한 해석을 한다.

 “응, 이 걸 먹으면 돼지 같이 살이 찌고 건강해진다고 붙인 이름이야. 그러니 너도 많이 먹어라.”

 “난 돼지 되기 싫은데.” 손주놈의 귀여운 투정에 모두들 하하 웃는다.

 “돼지 되는 게 아니고 키가 커지고 힘이 세진다는 얘기야” 지네 아빠의  주석에 손주는 비로소 안심을 하고 숟갈질을 한다.

 

 “아! 잘 먹었다. 며느리 덕택에.”

 콩나물 꼬랑지 하나 안 남기고 밥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남편이 나를 향해 빙그레 웃으며 하는 말이다. 고맙다는 웃음인지? 미안하다는 웃음인지? 아리송하다.

 식사 준비에 짜증을 부리던 나의 마음이 어느새  흐믓한 기분으로 변했으니 그것도 아리송하다.

  2010, 0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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