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유배 생활
김 정연
H선배가 어제 유배지로 떠났다. 제주도 어딘가로 가서 세상을 잊겠다고 했다. 석 달 아니면 여섯 달쯤을 신문 전화 티브이를 모두 꺼 버리고 스님이나 구도자처럼 저잣거리와 연을 끊고 다소 느긋한 출가를 감행 하겠다는 선배에게 우리는 ' 거룩한 가출을 축하합니다.' 하고 박수를 쳤다.
"자발적 유배생활이군요." 부러움에 가득찬 마음을 보이니 선배는 "맞아, 그 유혹에 빠진지가 3,4년 되었어. 이제사 실행해 보려는 거지."한다.
H선배는 경대 사대 부속 중, 고등학교 3년 선배인데 동창회 등산모임에 참석하면서 가끔씩 뵙는 분이다. 28년 동안 군인 생활을 하다 10여 년 전 대령으로 예편하여 젊었을 때 꿈인 소설가가 되고 싶어 5년 전 사이버 대학에 진학하여 열심히 문학 수업을 하는 분이다. 남은 생의 열정을 문학에 바치고 싶어하는 참 순수한 분으로 평소 내가 많이 존경하는 선배다.
유배란 왕조 시대 선비들이 역모를 꾀했거나 모함에 빠져 멀리 척박하고 생소한 곳으로 내쳐지는 형벌이었다. 물론 죄인도 많았지만 주로 누명을 쓴 선비들이 강압적으로 단절을 당하고 억울함을 통탄하며 괴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 유배 생활이다.
누명도 쓴바 없는 선배가 자진 유배를 간다? 하긴 추사 김정희, 정약전과 약용 형제, 그리고 윤선도나 정철이 모두 유배 생활에서의 외로움과 고독을 오로지 자신 속으로 침잠하는 시간으로 잘 활용하여 창작을 하게 되지 않았던가. 추사의 <세한도>나 정 약전의 <자산어보>등이 그렇게 탄생한 불후의 명작들이다.
"가족의 이해와 허락을 받으셨어요?" 내 질문에 선배는 "물론 처음에는 마누라와 자식들이 청소년기의 가출 욕망쯤으로 치부하여 한심해 하더군. 내가 잘 설득했지, 건강에도 도움이 될 거고, 백수이니 사회적으로도 손해 볼 거 없고, 또 알 수 있나? 대단한 작품 하나 써 올 수도 있다고."
‘작품도 쓰시겠다고?’ 선배가 부러워 배가 살살 아파지려는 찰라, 7년 전 쯤 행한 나의 가출 행각이 문득 떠오른다.
아침에 약국에 나오니 행운목 꽃가지가 싹둑 잘려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었다. 수년 동안 꽃을 피우지 않던 나무가 그해엔 꽃망울을 맺어(작은 꽃가지에 올망졸망 매달린 모양이 꼭 아카시아 꽃 모양을 닮았다.) 나의 마음을 무척 달뜨게 했다. 큰아들이 고시를 보는 해라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꽃에 남몰래 애정을 쏟으며 이제나 저제나 꽃피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차였다. 깜짝 놀라 누구 짓인가? 추적해 보니 범인은 남편이었다. 분노와 함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전화로 따졌다. "왜 피지도 않은 꽃가지를 잘랐나? 내가 얼마나 꽃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줄 알고나 있냐? "고 하자 그 남자 왈 "다 핀 꽃 아닌가? 그리고 잘라도 될 것 같아 잘랐는데 뭐가 잘못됐나?" 잘못이 없다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만 했어도 내가 보따리를 싸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원도 평창으로 차를 몰았다. ' 그래, 나 없이 잘 살아봐라. 30년 동안 애 낳고 밥 해주고 약국 보느라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살아왔던 세월이 억울하다 억울해, 고집불통에다 맨 날 천 날 된장찌개나 좋아하고‘. 나는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남편의 단점과 허물을 있는 대로 읊으며 난생 처음 하는 가출에 ( 아니 탈출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신이 나서 액셀레터를 막 밟아 댔다.
금당 계곡 꼬불꼬불한 산길을 한참 들어간 '산새 소리' 라는 펜션에 몸을 누이니, 갓 물들기 시작한 단풍의 어여쁜 미소와 바위를 치며 콸콸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또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 까지 어우러져 모두 나의 가출을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모든 잡다한 일상의 번잡을 털어버리고 혼자서, 오직 나 홀로 느끼는 자연의 숨소리와 자유스러운 정신의 가벼움에 작은 흥분감도 일었다.
첫 밤을 지내고 아침에 핸드폰을 켜보니 수도 없이 전화가 와 있었다. 약국, 집, 아들, 심지어 시집간 딸애의 전화도. '많이 답답한 모양이지? 애 좀 먹어봐라.' 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인근 봉평에 있는, 평소 내가 좋아하던 작가 ‘이효석 문학관’ 으로 가서 그의 체취를 느끼고 가을볕의 따사로움에 몸을 맡기는 유유자적한 한가로움을 맘껏 누렸다.
두 번째 날의 밤, 산간에 어둠이 내리고, 자유로운 해방감에 한껏 낭만을 느끼며 서너 잔 마신 와인이 문제인가? 나의 가슴에 뭔지 모를 작은 동요가 일었다. 숲을 흔들며 부는 바람과 검게 일렁이는 나무들의 모습이 내 마음에 적막감을 안겨다 주며 조금씩 외롭고 쓸쓸한 기분이 되었다. 이틀 동안 팽개친 약국 일도 걱정이 되며, 더욱이 큰 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아 눈물이 났다. '내가 좀 심했나?' 모르고 한 일을 가지고 너무 몰아 부친 나의 옹졸함도 뉘우쳐지고 별 탈 없이 살아온 나의 삶에 고마움을 느끼긴 커녕 더 큰 욕심을 부리는 것 같아 자책감도 들었다. 방문 문고리가 허술한 것이 신경이 쓰여 고스란히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날이 밝기가 무섭게 서울로 향하였다. 엄청 초췌해진 모습으로.
그해 가을 자의반 타의반의 가출은 나에게 별반 의미롭지가 않았다. 그 후로도 나는 계속 된장찌개를 끓였고, 멋진 작품도 쓰지 못했으니.
허나, 선배는 나와 달리 멋진 작품 하나를 잉태 하실 거를 믿는다. 평생의 꿈인 작가의 길에 무난하게 진입하여 무척 활기 찬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을 확신한다.
에드가 알란 포우가 말한 행복의 네 가지 조건은
첫째 야외 생활 , 둘째 어떤 존재에 대한 사랑, 셋째 모든 야심으로부터의 초월, 넷째가 창조 행위였다.
여기에 딱 부합 하는 것이 H선배의 꿈인 자발적 유배생활이다. 한없이 통속적으로, 이렇게 속절없이 늙어가는 우리의 상투적인 삶에 테러를 가하여 커다란 행복을 꿈꾸는 H선배의 용감성에 갈채를 보낸다.
20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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