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산을 타는 법들 : 노자,공자, 장자가 산을 오른다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사람마다 산을 즐기는 방법은 조금씩 다르다. 산에 가면 등산 초입의 계곡에서부터 아예 상을 받고 않아 하루해 다가도록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사색에 잠긴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은 힘에 부쳐 산을 오르기 어려운 연배가 지긋한 이들이다. 이들을 곡신(谷神)의 후예들이라고 부르자. 산의 깊음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노자가 말하는 상선약수(上善若水: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의미)는 바로 이 곡신을 찬양하는 귀절이다. 산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물 한방울 흐르지 않는 다면 그 산은 정취가 떨어진다. 산은 물을 품고 있어야면 품위가 더하고 그래서 계곡은 더욱 아름다워지는 법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세상의 번뇌와 짐은 혼자 다 지고 가는 듯, 구부린 허리를 산의 경사각에 맞추고 땀을 뚝뚝 흘리며 가는 사람들이 있다. 짐의 무게에 지구의 중력까지 더해져 몸은 한없이 뒤로 잡아 끌려도 앞으로 앞으로 숙명처럼 오르는 사람이 있다. 왜 오르냐고 물으면 오를게 없으면 산이냐고 반문하는데 옳은 대답이다. 그렇게 오르다보면 당연히 정상에 오르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꼭 정상 정복을 위해 산을 찾는 것은 아니다. 오름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 참 진지한 모습이다. 산의 오름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항상 모두가 정상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산에 오면 언제나 정상에 도달해야 속이 풀리는 사람들도 있다. 산 초입에서부터 눈은 정상을 노려 보고 꼭 다문 입술에 주먹을 불끈 쥐고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정상에 다다르면 세상의 모든 짐을 다 벗어 던지고 신문지 한장 깔아 누워 “흘러가는 구름이 우리네 인생 같구나!”하고 어쭙쟎은 시 한수를 뽑아도 그들의 낭만을 폄하할수 없는 초연함을 지니고 있다. 산의 높음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노자와 공자, 장자가 산을 찾았다. 누가 산의 어디에 있을까?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 뱃속에 칠십여년을 살다 나왔다는 노자는 길다란 허연 수염 휘날리며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시조 한수 길게 뽑는다. “곡신은 불사(不死)하니 상선은 약수로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요 자연의 순리이니 인간은 물에게서 배우라는 뜻이다. 강이나 바다가 많은 계곡물의 으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계곡물보다 낮은 위치에 처할 줄 알기 때문이다. 세상에 물보다 부드럽고 물보다 약한 것이 없지만 물의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물의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기니 그래서 물이야말로 만물의 의뜸이라는 것이다. 이 물이 지니는 무위적이고 자연적인 속성이 바로 인간이 본받아야 할 도(道)이다. 흐르되 높이를 거스르지 않고 멈추되 굳어 버리지 않는 물은 무위(無爲)의 표상이다. 아무 것을 하지 않음도 아니요 억지로 함도 아닌것이 무위의 본뜻이다. 유학이 인의예지로 윤리기강을 세운다 말하고 군자는 충과 효로 치국의 지혜를 말한다하지만 노자의 눈에는 억지춘향이 같은 짓이요 없는 무지개 쫒아 가는 헛놀음으로 보인다. 산마저 휩쓸어 버릴 힘을 가지면서도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를줄 아는 물이야말로 만물에 스며들어 생명을 불어 넣어 주되 결코 다투지 아니한다. 그래서 물같은 사람을 물로 보지 말라는 것이 노자의 정신이다. 여성성의 참된 가치를 간파한 노자는 인류 최초의 페미니스트이다.
공자는 고문관 같이 무뚝뚝하고 어깨가 견실하다. 언제나 무거운 짐을 지고 오르고 또 오른다. 자기 몫의 짐을 지고 가다가 이 사람 저 사람 얹어놓은 짐보따리가 적지 않다. 그러니 그의 얼굴에서는 언제나 성(誠)의 땀방울이 맺혀 흐르고 인(仁)의 눈주름이 삶의 무게를 더해준다. 그의 등산 가방은 크기도 하지만 참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산을 오르는 원리인 충(忠)과 효(孝)가 들어있고, 산길에 만나는 사람들을 대하는 인(仁)은 물론이고 그 외 등산의 윤리 규범들이 수록된 교과서들이 가득 들어있다. 올라가다 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산은 언제나 올라가야 한다고 추스리며 격려한다. 올라가야만 우리 인생은 그 다운 것이라고 일장 훈계를 하지만 모두가 그처럼 성실한 것은 아니다. 산을 오르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꽤도 부리고 포기하고 싶기도 하련만 그의 모습은 한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에게는 정도(正道)만 있을 뿐이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아야 한다. 그는 언제나 바른 길로만 간다. 그러기에 그는 스승이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 산을 오르다 마주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의 차림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 그의 이마에 질끈 동여맨 수건에 빨간색으로 쓰인 선명한 한 글자, 성(誠)을 보게 될 것이다.
장자는 광대다. 언제나 산꼭대기 넙적 바위에 배꼽 열어 제치고 누워있는 기인이 장자다. 그의 젊음때문인지 산을 올라도 참 쉽게 오른다. 등산이라 하지만 소풍처럼 뒷짐지고 휑하니 올라 구구만리 창공을 떠다니는 그는 꿈쟁이다. 등산이라하지만 그의 차림새를 보아도 등산객인지 유람객인지 잘 구분이 안간다. 어깨에 맨 등산가방 하나 메는 멋쯤은 부릴 줄 알아도 그 속에 담긴 것은 바람뿐이다. 무명(無名), 무기(無己), 무공(無功) 의 휑한 바람만 들어 있다. 노자의 노숙함도 공자의 심각함도 그에게는 가벼워 보인다. 나비의 꿈을 꾸면서 사는 그는 산을 오르지 않아도 언제나 산꼭대기에 있는 것 같다. 그에게 정도(正道)란 없다. 길이 있으면 오히려 길로 들어서지 않고 샛길로 빠져가고 싶은 그이다. 누가 간 길을 얌전히 안전하게 따라 간다면 더이상 장자가 아니다. 길을 가되 빈둥빈둥 간다. 그것을 그는 소유유(逍遙遊)라고 불렀다. 소유유는 마음이 가는대로 이리저리 자유롭게 거닐며 자연을 벗삼아 풍취를 즐기며 사는 삶을 말하지만 그러나 단순히 한가하게 일없이 노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음에 짐을 지우지 않고 즐겁게 살아가는 자세를 말한다. 그러니 집착과 성취를 위해 걷는 것은 소유유가 아니다.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것이어야 소유유이다. 그의 목적지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 인바, 사실 어느 곳에도 없는 장소이다. 끝없이 광막하고 확 트인 그의 세계를 말할 뿐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참새도 집이 있고 제비도 새끼두는 둥지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둘 곳도 없다고 하신 그 의미도 바로 같은 의미이리라. 인생이 사실 바둥댄다고 항상 더 잘 되고 열심히 한다고 항상 최선의 결과과 따르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모든 인위적인 잔재주를 농(弄)하지 말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가는 것이 인간이 취해야 할 길이요, 또 사실 인간은 그렇게 밖에 달리 할 도리가 없는 존재이다. 그러니 주먹을 불끈 쥐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우화(寓話)에 나오는 주인공들중에는 불구자들이거나 비정상적인 모습이 많다. 그들은 한결 같이 겉모습은 추하지만 그 마음은 매우 곱고 평안하다. 장자의 눈에는 미추(美醜)가 시비(是非)나 선악(善惡)이라는 개념과 연결되지 않는다.
계곡만으로 산의 즐거움을 다 묘사할 수 없고 산의 허리 만으로 산의 형세를 다 말할 수 없으며 산의 정상만으로 산의 가치를 다 말할수 없다. 산은 모두를 품고 있으되 인간은 그 산의 모두를 품을 수 없어 여기저기 걸쳐 있을 뿐이다. 산을 닮으려면 산의 깊음과 강직함과 높음을 닮아야 한다. 그러나 산도 우리 인생처럼 과정에 걸쳐있는바 시기에 맞게 닮아야 한다. 젊어서부터 계곡에 들어가 한 상을 받고 해가 가도록 산을 즐긴다 한들 어디 격에나 맞을까? 정상에서는 언제나 건강하고 강인한 외침이 온누리에 퍼져 넘쳐야 한다. 젊어서 정상의 기상과 호연지기를 맛보지 못하면 그 기회는 점차로 줄어든다. 중년이 들어 힘이 부치면 꼭 정상을 탐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아직 근력이 있고 두 다리가 성하니 해가 있을 때 올라 가야 한다. 정신의 나이는 마음먹기에 달렸지 않은가? 가다가 되돌아 와도 자신을 책잡을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길을 달려온 어르신들은 그래서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자연을 벗삼아 약주 한잔에 노래 한가닥 불러도 산은 눈을 흘기지 않으리라. 꿈을 꾸는 장자는 언제나 청춘이다.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공자는 중년의 신사이며 인생의 낙조를 관망하는 노자는 노신사이다. 그러니 꿈을 꾸는 이삼십대는 장자를 바라보면 구만리를 상상하게 되고 꿈을 펼치는 사오십대는 공자를 바라보며 성실과 끈기를 배운다. 꿈을 정리하는 나이에 들면 노자에게서 여유를 배운다. 장자는 인생을 유희(遊戱: 놀이)적 관점에서 보았고 공자는 일상(日常)의 가치로 추구했으며 노자는 관조(觀照)적 차원에서 보았다. 인생을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각기 자신이 처한 때에 맞는 철학과 정신을 살아야 한다. 꿈을 꿔야할 세대가 지나치게 진지하다면 그 또한 멋적은 인생이리라. 성실히 땀방울을 흘려야 할 시기에 꿈속에 유유자적한다면 그 인생은 뜬구름 같은 것이리라. 나는 지금 산의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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